키즈 존에서 스키를 타는 아이들.
코펜힐의 다른 이름은 ‘아마거 바케(Amager bakke)’다. 덴마크어로 ‘바케’는 언덕을 뜻한다. 도심 동쪽에 떠 있는 아마거 섬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아마거 섬에는 2020년 ‘미쉐린 가이드’ 별 2개를 받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와 50여 개 친환경 식당이 몰려 있는 ‘레펜 푸드 마켓'이 있다. 지금 아마거 섬 북부는 코펜하겐에서도 가장 ‘힙한’ 동네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쇠락한 공장지대였다. 코펜힐 자리에는 40년 묵은 낡은 소각장이 있었다. 이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코펜하겐시는 에너지 생산시설과 여가공간을 겸한 건축물 설계를 공모했다. 2011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축회사가 경쟁을 벌였고, 덴마크의 건축회사 BIG가 선정됐다.
2011년 착공에 들어간 BIG는 2017년 발전소를 완성했다. 평범한 발전소가 아니었다. 2005년부터 강도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 정책을 펼친 코펜하겐시는 신재생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여 쓰레기 태운 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신개념 발전소를 만들었다. 기존 소각장 기능을 활용한 거다. 2018년 45만 톤에 달하는 고체 쓰레기를 태워 3만 가구에 난방을, 7만 2,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했다. 날마다 300대의 트럭이 전기와 열의 원료인 쓰레기를 실어 나른다.
쓰레기 소각장은 가동을 시작했지만, 미완성 상태였다. 지붕은 발전소 가동 2년 뒤인 2019년 10월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쓰레기 소각장이라고 볼 수 없는 건축물이 완벽한 형태를 갖췄다. 번쩍번쩍 빛나는 유리창과 알루미늄 조각을 뒤덮은 발전소는 그 자체로 눈부셨고, 초록 융단이 깔린 옥상을 보면 작은 산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한 마디로 기묘한 조합이었다.
코펜힐 쓰레기 소각장의 옥상 스키장이 보이는 전경.
발전소도 중요하지만, 건물 외부와 옥상에 들어선 여가시설이야말로 코펜힐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12층 높이 건물 옥상은 일부러 비스듬히 설계했다. 인공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실 스키장은 BIG 비야케 잉겔스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 2000년대 초, 코펜하겐 도심 백화점 건물에 인공 스키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공간 제약 때문에 꿈을 접었다. 잉겔스 대표는 “덴마크에는 산이 없다”며 “알파인 스키를 탈 수 있는 인공 산을 만들기로 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덴마크는 국토 전체가 다리미로 납작하게 눌러놓은 듯 지형 전체가 평평하다. 가장 높은 지역이 해발 147m이니 언덕 수준에 불과하다. 눈도 많이 안 내린다. 덴마크 사람이 스키를 타려면 알프스 산맥이 있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로 가야 했다. 코펜힐이 생기기 전까지는.
코펜힐은 사계절 스키장이다. 봄, 여름, 가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 질감이 눈과 비슷한 네베플라스트(Neveplast)라는 재질로 슬로프를 덮었다. 슬로프 길이는 490m, 면적은 2만 7,000㎡다. 한국 스키장의 초중급 코스와 비슷하다. 리프트는 4개이고, 프리스타일 스키 존 · 키즈 존도 따로 운영한다. 옥상 한편에는 덴마크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스키를 타다가 맛난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코펜하겐 시내는 물론 멀리 스웨덴까지 보이는 전망을 감상하기도 좋다.
코펜하겐 시내가 보이는 전망대.
스키장이 다가 아니다. 건물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5m짜리 암벽등반장을 만들었다. 슬로프 한편에는 500m에 달하는 등산로도 조성했다. 7,000여 그루의 관목과 침엽수 외에도 수많은 식물을 심어 진짜 산속을 걷는 기분을 느끼도록 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스키와 등산을 즐기기 찜찜하지 않을까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소각장이 배출하는 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첨단 세척, 정화 기술로 먼지와 재뿐 아니라 온갖 중금속까지 걸러낸단다. 123m 높이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코펜하겐 시내에서도 보이는데 무해한 수증기란다.
코펜하겐시가 이런 기상천외한 시설을 들인 건 2025년까지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도시’가 되겠다는 목표 때문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코펜힐은 ‘지속 가능한 발전', ‘탄소 중립’, ‘신재생에너지’ 같은 따분한 단어를 앞세우지 않는다. 주민과 관광객이 재미난 건축물을 두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도록 한다. 2019년 코펜힐 완공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비야케 잉겔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단지 환경만을 고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을 즐기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 건물이 미래 세대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