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모 명품브랜드가 지난 5년간 명품 가치를 지키기 위해 1,300억 원에 달하는 재고를 소각했는데, 이를 두고 전 세계 각지에서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이 업체는 여론에 밀려 2018년 하반기, 소각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 일은 사실 이 업체만의 일이 아니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옷의 3분의 1 이상이 판매도 되기 전에 폐기되고 있다. 무게만 해도 1,300만 톤에 달한다. 거기에 재고량도 엄청난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4조 9,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세가 된 패스트패션이 자리 잡고 있다.
‘패스트패션’이란 단어는 스페인 패션브랜드 ‘자라’가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2주밖에 걸리지 않는 속도로 옷을 생산해내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빠르게 유행을 따라가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고, 지금은 패션의 큰 축이 되었다. 공정 속도도 점점 빨라져서 이제는 1주일이면 새로운 옷을 만들어 내는 ‘울트라 패스트패션’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패스트패션은 소비자가 패션을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게 해주면서 ‘패션의 민주화’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좋은 면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는 법이다.
먼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패션 분야가 매년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약 120억 톤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에 해당한다. 우려되는 점은 패션산업의 성장과 함께 20%까지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식물성 섬유 생산을 위한 면 등의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농약 사용과 이로 인한 토지 황폐화, 동물성 섬유 생산을 위해 벌어지는 숲의 벌채와 동물의 분뇨, 도축 등으로 인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가공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표백, 특수 처리 등을 위해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 때문에 발생하는 오염된 물은 전 세계 공업용수오염의 약 20%를 차지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빠르고 싸게’라는 방향은 이 산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국가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건강 위협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거기다 가죽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서만 한 해 소 3,500만 마리가 도축되고 있다. 이 외에도 오리, 거위, 밍크, 토끼 등 수많은 동물이 패스트패션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패션’에 대하여 ‘지구에서의 지속 가능성’, ‘윤리성’이라는 기준이 점점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친환경, 공정거래, 동물복지, 업사이클링 등의 슬로건에 주목하는 기업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패션계의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 기업을 움직이는 중심은 소비자, 바로 우리다. 트렌드의 선두주자인 패션을 대함에 있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둔 나의 패션 지수를 살펴보고, 이를 위한 생활 속 팁을 챙겨보도록 하자.
➊ 계절별로 옷 정리하기
옷을 계절별로 정리해두면 그 계절에 필요한 옷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상황을 제대로 알고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옷을 살 때도 필요한 것이 파악되어 있어,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다.
➋ 수선 & 리폼과 친해지기
옷을 오래 입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 단추나 지퍼 고장 같은 가벼운 수선부터 리폼처럼 옷을 새로운 옷으로 탈바꿈 시켜 수명을 늘려보자. 만약 옷이 해졌다면 소매, 목둘레 등만 교체하거나 짜깁기를 할 수 있다. 덧대기 바느질로 조금 새로운 디자인을 얹어 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멋스러움이 나오기도 한다. 브랜드 의류라면 수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자. 이들의 수선 가능 리스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해 놓치는 수선 항목이 상당히 많다.
➌ 새로운 주인 찾아주기
쓰임 없이 가지고만 있으면 쓰레기가 되고 나누면 기쁨이 된다. 옷은 유행도 있지만, 나이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따라서 지금의 내게는 눈에 차지 않는 옷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옷일 수 있다. 그러니 입지 않는 옷을 기부해보자. 기부처의 오프라인 매장이나 수출 등을 통해 필요로 하는 새 주인을 찾아주어 옷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➍ 합성섬유보다는 천연섬유 쓰기
합성이라는 것은 석유를 베이스로 한다. 그런데 석유에서 뽑아낸 이 합성섬유를 소각할 때 온실가스와 함께 여러 가지 다량의 유해물질이 나온다. 게다가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토양에 남아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면, 실크, 캐시미어, 리넨 등 천연섬유 외에도 버섯, 대나무, 코르크, 미역과 같은 해조류 등 다양한 생분해 소재의 섬유가 있다. 섬유가 분해되는 데 면 소재가 1~5개월, 버섯 섬유가 3개월의 시간이 필요로 한다. 이 점만으로도 천연소재는 지속 가능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➎ 드라이클리닝과 멀어지기
드라이클리닝은 물 대신 석유계의 유기용제를 사용한다. 보통은 물에 닿으면 색상이나 형태 등이 변형되는, 까다로운 옷들에 드라이클리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유기용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옷에 남아 피부를 자극하고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성 물질을 함유한다. 나와 지구의 건강을 위해 물세탁이 가능한 소재를 쇼핑 구매목록 1순위로 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