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 MEET
역사의 해석과 미래의 전망을 넘나들며, 대중에게 건축과 도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고 있는 유현준 교수.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로서 그가 생각하는 뉴노멀 이후의 도시 이야기를 들어본다.
스마트하면서도
인간성을 간직한

도시로의
진화를 꿈꾸며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뉴노멀로 도시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도시의 진화에 어떤 화두를 던졌을까요?

코로나19로 사람 간의 간격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단위 면적당 들어가는 사람들의 밀도가 바뀌게 되면서 사람들끼리의 관계까지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 안에서 공간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공간 시스템의 발전을 이뤄왔고, 이를 통해 사회가 움직여왔는데 그런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와 새로운 재구성이 일어난 것이죠.

코로나19로 인해 변한 도시의 복구도 빠르게 이뤄져야 할 텐데요.
지금 거리에는 빈 상점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소비가 늘어나고 재택근무 비중이 커지면서 상업시설과 상가 공실률도 높아졌죠.
대표적으로 식당 같은 경우는 최근 영업 형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배달을 통한 매출로 상당 부분 전환되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굳이 임대료가 비싼 1층 위치에 자리 잡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거리에서 직접 간판을 노출하며 식당을 홍보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알릴 수 있으니까요. 즉 입지상의 메리트는 줄어들죠.
재택근무 비중이 커지면서 사무실이 필요 없어진 회사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 또한 상가의 공실률에 영향을 끼쳤죠.
이렇게 줄어든 상업시설의 비율은 30%에 이릅니다. 이러한 공간은 주거시설로 활용할 수 있어요. 또 위성학교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교실은 텅 비게 되었죠. 수용인원이 높을수록 전염병에 취약합니다. 전교생 1,000명인 학교 하나보다 100명인 학교 10개로 쪼개는 것이 나아요. 위성학교, 즉 작은 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입니다.

  • 유현준 건축가는 건축물에 변치 않는 가치를 가미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설계한 쌍달리 주택의 건축 모형.

    유현준 건축가는 건축물에 변치 않는 가치를 가미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설계한 쌍달리 주택의 건축 모형.

  •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은 건축물과 도시에도 적용되는 화두다. 사진은 사람과 공간 간의 소통을 추구한 Green Facade의  건축 모형.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은 건축물과 도시에도 적용되는 화두다. 사진은 사람과 공간 간의 소통을 추구한 Green Facade의 건축 모형.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더 나은 도시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좋은 도시는 걷기 좋은 거리가 있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요. 코로나19 이전에도 ‘걷기 좋은 도시’는 도시의 큰 화두였습니다. ‘과연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사람들을 바깥에 나오게 하고, 서로 만나게 할 것이냐’라는 문제는 건축가와 도시 설계자가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바깥에 나와 주로 가는 장소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페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 카페가 거리를 가득 채웠던 이유죠.
코로나19 이후 공통의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물류로 소비되는 공간은 많이 늘었습니다. 배달 오토바이나 택배 차량은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이제 물류를 안전하면서도 편리하게 이동시킬 방법이 필요합니다. 지하에 자율주행 로봇이 다닐 수 있는 물류 터널을 만들면 도로 위 교통량을 줄일 수 있겠죠. 차선 수도 줄일 수 있고요. 그렇게 확보된 공간으로 공원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부담 없이 거리로 나가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형공원*의 형태면 더욱더 좋겠지요.

*선형공원 : 주거지 가까이에 있는 좁고 긴 모양의 공원.
대표적으로 경의선 숲길이 있다.

유현준 교수는 사용자와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로서의 건축물을 만든다. 사진은 신안군 압해읍의 종합복지관.

유현준 교수는 사용자와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로서의 건축물을 만든다. 사진은 신안군 압해읍의 종합복지관.

도시 계획 외에 시민들이 스스로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최근 미디어에 공간을 다룬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어요. <나의 판타집>이나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들이죠.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이제 소수의 의사 결정자들에 의해 세상이 바뀌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시민들이 도시의 시스템과 도시를 이루는 건축에 대해 어느 정도로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정책도 바뀔 수 있습니다.
건축이나 도시는 한 번 만들고 나면 100년 이상 가기 때문에 시점을 미래에 두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각자의 가치관이나 시각으로 더 많은 담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가 좋은 예입니다. 버려진 도시의 공간을 단 두 명의 시민이 주도해서 만든 공원이거든요. 이처럼 도시 시민들이 앞장서서 도시를 바꾸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시민들의 의식 변화와 함께 미래의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그동안 건축과 도시는 항상 에너지를 소비하는 주체로 기능해왔죠. 이제는 도시와 건축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건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 건축물이 일종의 작은 발전소가 됩니다. 일방적으로 소비를 하는 도시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역할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지요. 지금 도시는 동물성이거든요. 항상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에너지를 흡수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포식자 같은 존재죠.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시 시스템 공간 자체가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덧붙여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스마트 고밀화를 시켜야 합니다. 도시 재건축을 통해 도시를 더 좋게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지역 거점 오피스도 좋은 대안이겠죠.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바꿀 부분은 바꿔서 21세기에 맞는 도시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죠. 창의적인 솔루션이 더욱더 많아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와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도시입니다. 도시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핵심이죠. 이를 위해서는 공통의 좋은 추억이 많아져야 합니다. 시민들이 도시 안에서 좋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건축과 도시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축을 알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집니다. 저는 건축이 정말 재밌거든요. 재미있는 드라마나 미디어 콘텐츠를 보고 나면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잖아요. 수다 떨고 싶고. 저는 그런 마음으로 건축과 도시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유튜브나 저서로 대중과 소통하는 이유죠. 저의 책을 보거나 방송을 보시면서 “건축이나 도시를 이렇게 볼 수도 있네?”라고 느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건축과 도시를 알게 될수록 지금 내가 사는 공간에도 더욱더 많은 관심을 두게 돼요. 건축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좋겠습니다.

최두옥 대표

유현준 교수는 저서와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건축과 도시를 보는 생각의 징검다리를 제시하고 있다.

글. 서혜진 / 사진. 이원재 Bomb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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