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한전 인터뷰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우리의 생활공간에 도착하려면 많은 전력설비와 긴 전선을 통과해야 한다. 전기저항은 그 움직임을 방해하고 전력손실을 일으키는 주범인데, 영하 200℃의 극저온으로 이를 ‘0’에 가깝게 만드는 마법 같은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9년 11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초전도 송전이 그 주인공이다.
‘초전도 송전’ 세계 첫 상용화 성공!
왼쪽부터 한전 전력연구원 양형석 수석연구원, 경기본부 최상철 차장, 계통계획처 손혁찬 차장.

세계 최초 초전도 송전 상용화의 기획, 기술 개발, 운영에 힘쓴 주역들.
왼쪽부터 한전 전력연구원 양형석 수석연구원, 경기본부 최상철 차장, 계통계획처 손혁찬 차장.

‘초전도’로 용량 Up, 손실 Down

어떤 물체가 움직이면 그 이동을 방해하는 저항이 생긴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자동차가 달릴 때는 공기저항이 생겨서 속도를 낼 때 어느 정도 손해를 본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각 가정과 일터로 보내는 과정에서 전기저항이 생기고, 전력손실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전기저항을 없애면 없앨수록 더 많은 전력을 한층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기저항을 ‘0’에 가깝게 만들 수도 있을까. 놀랍게도 방법이 하나 있다. 초전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초전도는 영하 100℃ 이하의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에 가까워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자기부상열차, 병원 MRI, 입자가속기 등에 활용되는데, 전기를 보내는 데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송전 설비 소형화, 송전 효율 극대화 등 다양한 장점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기술 장벽이 높아서, 2000년까지만 해도 몇몇 선진국에서만 연구가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200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한 DAPAS(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한전 계통계획처 손혁찬 차장이 “그 중심에는 한전이 있다”며, 초전도 송전의 핵심인 초전도 케이블에 대해 설명했다.
“초전도 송전을 위해서는 전용 송전선인 ‘초전도 케이블’이 있어야 합니다. 초전도 케이블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로 만든 전선과 전선의 외부를 감싸서 온도를 극저온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냉매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신선식품의 배송을 위해 식품 주변에 얼음주머니를 넣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개발한 초전도 케이블은 영하 196℃의 액체질소를 냉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영하 200℃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을 개발해 전선의 재료(선재)로 쓰고 있습니다.”
초전도 케이블을 활용하면 일반 케이블 대비 전력손실을 1/10 이하로 줄일 수 있고, 송전용량은 5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일반 케이블을 5줄 깔아야 보낼 수 있는 전기를 초전도 케이블 1줄로, 전력손실이 거의 없이 송전할 수 있다는 의미. 초전도 송전이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초전도 전력케이블

초전도 전력케이블

초전도란?
매우 낮은 특정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에 가까워지는 현상이다. 1911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카멜린 오네스가 수은의 초전도 현상 발현 온도(영하 268.8℃)를 발견한 이후, 다양한 물질에 대한 실험이 이어졌다. 현재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높은 온도는 영하 138℃이며, 한전은 액체질소(영하 196℃)를 냉각에 이용하기 위해 약 영하 200℃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소재를 개발, 활용하고 있다.

20여 년간의 연구와 기술 개발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다

한전은 초전도 송전 연구에 돌입한 지 3년 만인 2004년, 교류 23kV 초전도 케이블을 세계에서 4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11년에는 이천변전소에서 23kV 초전도 케이블 실증사업을 완료했으며, 2016년 제주 금악변환소에서 진행된 154kV 초전도 케이블 실증사업도 무사히 마쳤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초전도 송전 기술력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한전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19년 11월 초전도 송전 상용화에도 성공했다. 신갈변전소와 흥덕변전소를 잇는 약 1km 구간에 초전도 케이블을 활용한 송전 기술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초전도 송전 상용국’으로서, 이 분야에서 누구보다 앞서 나가고 있음을 증명한 순간. 초전도 케이블과 함께 초전도 송전의 핵심축을 이루는 냉각 시스템을 개발한 한전 전력연구원 양형석 수석연구원의 목소리에는 이러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초창기에는 기술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초전도 송전의 저변이 거의 없던 시점이었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죠. 하지만 20여 년에 걸친 꾸준한 연구와 지속적인 기술 개선 및 보완 덕분에, 지금은 저희가 개발한 초전도 송전 냉각 시스템에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2019년 11월 첫 상용화 이후 이렇다 할 문제 한번 없이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양 수석연구원이 기술력 향상과 함께 추구한 또 하나의 목표는 운영상의 편의성이다. 변전소 직원들이 누구나 쉽게 초전도 송전 운영 시스템을 쉽게 다루고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시인성과 간결성을 극대화한 것. 양 수석연구원의 이야기를 듣던 경기본부 최상철 차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초전도 송전 운영 시스템이 다루기 힘들었다면, 변전소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익숙하지 않은 송전 시스템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어요. 운영과 관리가 용이하고 잔고장 없이 안정적으로 가동되다 보니 현장 직원들의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전도 송전의 기술적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죠.”

최상철 차장, 손혁찬 차장이 전력케이블실에서 초전도 송전 운영 관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최상철 차장, 손혁찬 차장이 전력케이블실에서 초전도 송전 운영 관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꿈의 기술 확산으로 더욱 완벽한 전력공급 할 터

기존의 전력 케이블은 전력손실 때문에 765kV 또는 345kV의 초고압을 사용한다. 하지만 초전도 케이블은 전력손실이 거의 없고 대용량 송전이 가능하므로 154kV 또는 23kV 사용이 가능하다. 덕분에 고전압 송전을 위한 대규모의 송전 설비를 설치할 필요가 없고 케이블 설치 공간도 대폭 줄일 수 있어, 복잡한 도심지에서의 설치 및 운용에 매우 적합하다. 이와 함께 일상 속 전기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에도 좋다. 한전이 지속적으로 초전도 송전 기술 발전에 힘쓰고 있는 배경이다.
“초전도 송전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입니다. 초전도 케이블의 핵심 소재인 초전도 선재의 국산화를 통해 가격을 1/3가량 절감했지만, 여전히 일반 케이블에 비해 비싸고 냉각 시스템 구축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죠. 따라서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데요. 초전도 송전의 점진적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초전도 선재 광폭화 등의 추가적인 기술 개발이 뒤따른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전은 앞으로도 초전도 송전을 포함한 최신 전력 기술의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국민들에게 더욱 질 높은 전력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혁찬 차장의 이야기처럼, 한전은 초전도 송전의 기술 발전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올해 역곡 - 온수 간 초전도 송전 프로젝트를 추진, 세계 최초로 기존의 23kV보다 한층 높은 154kV 초전도 케이블 송전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문산 - 선유 간 23kV 초전도 플랫폼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안전한 도심형 전력 설비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초전도 송전 실증 및 상용화 프로젝트 입찰도 준비 중. 이렇듯 한전은 ‘꿈의 기술’로 국민들에게 더욱 풍족한 전기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신갈변전소와 흥덕변전소를 잇는 초전도 송전케이블.

    신갈변전소와 흥덕변전소를 잇는 초전도 송전케이블.

  • 초전도 송전 운용에 반드시 필요한 액화질소 냉각설비.

    초전도 송전 운용에 반드시 필요한 액화질소 냉각설비.

글. 강진우(자유기고가) / 사진. 이원재 Bomb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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