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핑의 드넓은 구릉 지대와 높게 솟은 건축물의 조화는 사람들의 눈길을 이끈다. 수백 년 전 도둑을 막고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집을 높게 지었던 전통적 건축 양식은 20세기 초 해외에서 부를 쌓아 고향으로 돌아온 화교들에 의해 변화를 맞이한다. 그들은 새로운 자재와 다른 문화 양식을 지역 전통과 결합하여 독특한 건축물을 만들었다. 문화 교류의 정수를 보여주는 카이핑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계유산으로 떠나본다. 글. 손휘주(여행 작가)
경계를 넘어 문화를 잇다
중국 카이핑 댜오러우
Kaiping Diaolou
자연과 지역, 사람 간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세계유산인 카이핑의 댜오러우 건축물
중국 동남부의 광둥성은 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는 곳이다. 예부터 무역인들이 다른 나라의 물건과 지식을 들여오던 중국의 관문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마카오, 광저우가 광둥 해안의 도시들이다. 높은 빌딩이 하늘로 솟고 거대한 선박이 복잡한 해안을 오가며 끊임없이 비행기가 하늘을 오르내리는 그곳에, 중국 근대사의 독특한 흔적을 보여주는 도시 카이핑(Kaiping)이 있다.
개평시(開平市)라고도 불리는 카이핑은 마카오와 광저우에서 차로 130km, 2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해안의 구릉지 속에 있는 그곳에는 굽이쳐 흐르는 강 주변으로 크고 작은 마을이 많다. 언덕 사이의 푸른 논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다 보면, 기이한 건축물이 모여있는 마을에 이른다. 우뚝 솟은 건물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그곳이 바로 댜오러우(Diaolou)다. 한문으로 쓰면 조루(한자깨짐樓), 즉 ‘돌로 세운 망루’라는 뜻이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 속에 회색빛이 감도는 저 건물들은 군사들이 소유한 망루가 아니다. 화교들이 세웠던 가정집이다. 한적한 농촌에서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만난 사연에 귀 기울여보자.
다양한 건축 형태의 망루로 유명한 카이핑의 진지앙리 마을(Jingjiangli Village).
가는 방법
• 광저우와 마카오에서 카이핑 시내까지는 대중교통(버스)으로 약 2시 30분이 소요된다.
• 카이핑 시내에서는 서쪽의 댜오러우 세계유산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 쯔리춘(자력촌) 마을과 리위안(입원)의 건축물을 보는 여행 일정이 일반적이다.
• 유산이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어 걸어 다니기보다는 마을 간 셔틀버스를 이용하길 권한다.
주의 사항
• 방문이 가능한 댜오러우는 9시부터 17시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건축물마다 관람 시간에 차이가 있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여러 댜오러우를 보고 싶은 경우, 기간 제한으로 여러 곳을 볼 수 있는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20세기 중반이 되기도 전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계단을 걸어 높이 올라가야 하는 주택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높은 층의 서양식 장식을 보면서, 소수의 카이핑 부자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지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댜오러우 수가 수백 개, 아니 2천 개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건물군 앞에서 궁금증이 더욱 커진다.
도적을 막고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때는 16~17세기였다. 중부 지방에서 내려온 도적을 방어하면서, 해안 지역의 무역과 상업으로 모은 재산을 보호해야 했다. 또한, 카이핑은 우기에 비가 많이 내려 홍수에 취약했던 해안 지방에 있으니 침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 비슷한 유형의 높은 건축물이 만들어지면서 지역성을 반영한 주택 구조로 자리 잡았다. 여기까지는 댜오러우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방어의 기능이 곁들어진 건축물, 아열대와 열대 지방에서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가옥 구조는 다른 대륙과 국가에도 흔하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은 카이핑 출신 화교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오래전 카이핑 사람들은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무역 활동을 펼치다 19세기에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미국, 호주 등으로 떠갔다. 그들은 힘들게 일해 많은 부를 쌓은 뒤 돌아와 큰 주택을 지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좋은 집을 짓는 것을 꿈꾼 카이핑 출신 화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치와 사회는 혼돈 속이었다. 1910년대부터 1930년까지 70여 차례나 도적들이 카이핑을 공격했다는 기록도 있다. 개평(開平), 즉 평화를 연다는 의미의 카이핑이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돈이 많은 화교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많은 도적을 불렀다. 결국, 귀향한 화교들은 조상들처럼 높은 건물을 세워 직접 나서서 가족과 마을을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문화권의 새로운 양식을 활용하여 건축물을 세우고 싶어 했다. 독특한 건축 양식이 탄생한 배경이다. 화교들은 서양의 자재를 수입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동 등에서 다양한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고향으로 오지 않는 화교들이 건축 자금을 보태기도 했다. 댜오러우를 만든 사람은 힘들게 부를 쌓았고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화교들이었다.
카이핑 지역의 건축물은 지역적 특색에 더해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화교들의 끈끈한 정이 담겨있다.
카이핑 지역의 건축물은 지역적 특색에 더해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화교들의 끈끈한 정이 담겨있다.
카이핑 사람들은 16세기 중반부터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다니면서 동남아시아 근처에서 해상 무역을 하기 시작했다. 1839년에 가난한 농부들은 마을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탄광이나 철도 선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내려온 하카족(客家族)과 전쟁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이 시작되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대단위 이민이 시작되었다.
댜로러우는 진흙, 나무, 돌, 벽돌, 콘크리트 등 현지에서 얻거나 수입하여 구한 여러 재료를 섞어서 세웠다. 모든 건축 자재를 수입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튼튼한 외관에는 콘크리트를 쓰고 내부에는 돌과 나무를 혼합하기도 했다. 건축 자재만큼 다채로운 것이 외부 디자인이다. 1,800개가 넘는 댜오러우는 모두 모습이 다르고 기능도 다양하다. 또한 수많은 댜오러우가 논밭, 구릉 사이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도 각양각색이다.
과거 모습이 잘 보전되어 지역성을 대표하고 문화 교류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들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쯔리춘(Zilicun)과 리위안(Liyuan)에 관광객이 많이 모인다. 자력촌(自力村)이라 불리는 쯔리춘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리위안은 입원(立園)이라는 이름의 저택인데 나무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들의 힘으로 마을을 지키거나, 인재를 키우고자 노력했던 카이핑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주민 대피소로 활용했던 건물과 감시를 위해 세운 망루처럼 마을 전체를 위한 건축물도 있어 공동체 정신도 돋보인다.
댜오러우를 하나씩 살피는 재미도 있다. 쯔리춘에 있는 십여 개의 댜오러우 중 밍스러우(Mingshilou)가 유명하다. 명석루(銘石한자깨짐)라고도 불리는데 사각형의 튼튼한 건물 위에 놓인 서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은 문화 교류의 정점이다. 거실, 주방, 화장실 등 기본적인 주택 공간에 더해, 조상 위패가 있는 공간이나 총안과 쇠문처럼 방어를 위한 장치를 찾는 여정은 여행에 흥미를 더한다. 다른 건축물이나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울려 경관 가치도 뛰어나다.
댜오러우 건축에 기여한 사람 중에는 해외에서 자금을 송금했던 화교들도 있다. 카이핑의 유산이 보여주는 지역 간, 사람 간 네트워크의 스케일이 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댜오러우가 여러 문화권의 교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유산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카이핑 사람들의 끈끈한 관계에 있지 않을까.
카이핑 사람들은 높은 벽을 세워 집을 지었지만, 국경과 문화 경계라는 더 높은 장벽을 넘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한 아름다운 세계유산을 남겼다. 비가 많이 내릴 때면 잠기는 논과 연못은 또 다른 벽이지만, 그 역시 경관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사람, 자연, 지역 간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건축 양식의 카이핑 댜오러우,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돌, 벽돌, 콘크리트 등으로 지은 댜오러우 중 가장 상징적인 건물 20개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사진은 쯔리춘에 자리한 명석루(銘石樓)
카이핑에 있는 전체 1,833개의 댜오러우 중에서 90%가량인 1,648개가 1900년~1931년에 세워졌고, 같은 시기에 대부분의 마을들이 건설되거나 재건되었다. 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카이핑의 시골 마을은 화교들이 제공하는 자금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다.
한전 최초의 해외 신재생 사업은 중국에서 시작된 풍력사업이다. 한전은 지난 2004년 6월 중국 5대 발전회사 중 하나인 대당집단과 중국 내 풍력 공동사업개발협약을 체결하였다.
사업 위치는 내몽고를 비롯한 요녕성, 감숙성이며, 설비용량은 1,024MW이다. 이 사업은 한전이 세계 최대 신재생 시장인 중국에 선제적인 투자를 통하여, 중국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풍력 651GW 중 1/3을 소유하고 있고, 최근 4년 연평균 성장률이 11%대인 최대시장이다.
2006년에 첫 번째 협력사업인 내몽고 새한패 45MW 풍력단지를 성공적으로 준공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지역을 내몽고, 감숙성, 요녕성 등 3개 지역으로 확장해왔다. 2007년 4월 감숙풍력이 준공되었고 2010년 6월 내몽고 풍력단지 1~3단계 준공, 2011년 11월 내몽고 7단계 증설이 의결되었고, 2017년 12월 요녕성 객좌 태양광단지 준공에 이르기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전-대당집단이 공동 개발(한전 지분 40%) 후 2020년 9월부터 운영 중인 중국 내 풍력사업은 총 22개 단지 1,017MW에 이른다.
또한 2017년 12월 요녕성 객좌 태양광단지(7MW) 준공을 통해,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간 상호보완으로 효율성을 높인 신재생발전 사업모델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전은 2019년 말 기준 누계 매출 6,271억 원을 달성하였고, 안정적으로 발전소를 운영함으로써 내몽고·감숙·요녕지역의 전력공급에 기여하고 있다.
내몽고 풍력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