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휴대 전화를 꺼냈는데 그 휴대전화가 태양 빛을 받으면 저절로 충전된다고 하면 아직도 다들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다. 태양광 발전소가 이곳저곳에 보급된 지금도 태양 빛을 전자 장치의 전원으로 사용하는 모습은 그만큼 낯설다. 혹시 태양광을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태양광을 다른 어떤 전력원보다 친숙하게 생각하는 지역도 있을까? 그런 경향이 꽤 오래 전부터 뚜렷한 곳이 있다. 사는 사람의 숫자는 아주 적지만 넓이로 따지면 대단히 넓은 곳이다. 바로 지구 바깥, 우주 공간이다. 글. 곽재식(화학자, 작가)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태양광
Solar energy in space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 위성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면, 누구든 커다란 태양광 전지를 활짝 펼친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런 모습은 이미 인공 위성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수십년 전부터 모든 사람의 모습에 또렷이 자리 잡았다. 옛날 증기 기관차에는 석탄을 집어 넣는 아궁이가 있었고, 지금의 휘발유 자동차에는 주유구가 달려 있듯이, 인공 위성이라면 태양광 전지를 펼친 모습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다.
우주에서 태양광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꿈에 처음 깊이 빠진 사람으로는 흔히 독일 출신의 한스 지글러 박사가 손꼽힌다. 지글러 박사는 1911년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 공학계의 연구 현장에서 일하던 인물이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사는 곳을 옮긴 지글러 박사는 미국에서 연구하던 중 태양광 전지 기술에 푹 빠져들게 된다.
그는 태양광 전지가 우주에서 더없이 유용하다는 생각에 도취되었다. 우주에는 산소가 없어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료를 태워서 발전기를 돌리기란 어렵다. 게다가 연료가 떨어질 때마다 로켓을 발사해 다시 보급해 주는 것도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전기를 얻기가 어렵다면, 우주에 널려 있는 것을 이용해서 우주에서 직접 전기를 만드는 방법 밖에 없다. 우주에 널려 있는 것? 우주에 햇빛은 널려 있지 않나?
지글러 박사는 우주에서 태양광을 사용해야만 더 오래, 더 멀리 우주에 머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열정적으로 그 주장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1958년 뱅가드 1호 인공위성이 발사되었을 때 기술자들은 여기에 태양광 전지를 장착했다.
뱅가드 1호 인공위성은 미국이 발사한 두 번째 인공위성이자, 사람이 발사한 네 번째 인공위성이다. 지금까지 1만 개에 가까운 인공위성이 우주로 나갔는데, 그 중 처음부터 헤아려 네 번째부터 태양광 전지가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60년 이상, 우주에서 태양광 전지는 가장 널리 쓰이는 전력원이 되었다.
우주에서 사용하는 태양광 기술의 독특한 특징으로 다양한 과학과 공학 분야의 기술이 결합하는 전형적인 종합 학문, 융합 기술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주 태양광 기술은 막막하게 먼 우주뿐만 아니라, 당장 지상에서 신재생에너지로 태양광을 활용하는 데에도 동시에 활용해 볼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즉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우주 개척을 위해 쉽게 공헌할 수 있는 분야로 단연 손꼽을 만한 것이 태양광 기술이다.
우주의 태양광 기술은 전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지만 단순히 전기 공학의 영역에서만 연구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튼튼한 태양광 전지를 만들어 내려면 재료공학 기술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주의 극심한 온도 변화, 강한 방사선, 맹렬한 속력으로 충돌하는 우주 먼지를 버틸 수 있다.
우주로 무거운 물체를 보내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태양광 전지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아주 얇게 만든 태양광 전지를 잘 접어서 작은 부피로 만들어 인공위성에 탑재하고 우주에 도착하면 그것을 가능한 한 넓게 펼쳐서 연결되도록 일종의 변신합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충격과 진동이 심한 로켓에 싣고 가는 동안 파손되지 않도록 태양광 장비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공학 문제다. 비슷한 맥락에서 태양광 장비가 사고로 일부 파손된다고 하더라도 전체가 작동을 중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부분만으로 가능한 한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곧 수리할 사람을 보낼 수 있는 지상과 달리, 우주에서는 나사못 하나를 조금 조여 주는 정도의 간단한 고장 수리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보내서 작업하는 것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2010년대가 들어 서면서 우주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은 더욱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2019년 중국에서는 우주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어서 전기를 지구로 전송하는 장비를 실용화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2010년 탐사선 이카로스를 금성에 보내기도 했다. 탐사선 이카로스는 태양광을 전기 만드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이루는 광자가 탐사선에 충돌하는 힘을 활용해서 우주선자체를 움직여 날아가도록 설계했다.
즉 태양광 전지는 지상의 친환경 사업이나 값싼 전기 요금의 꿈에 닿아 있기도 하지만, 우리를 우주로 데려 가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태양광 에너지 연구도 이런 먼 꿈을 잊지는 않아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태양광의 힘이 달에 세운 기지에 불을 밝히고 외계 행성의 개척자들이 화성의 황야를 달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눈부신 태양광 돛을 활짝 펼친 우주선이 햇빛의 힘으로 새로운 별을 찾아 먼 우주로 뛰쳐 나가는 장면을 볼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