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샛강 근처. 철망으로 덮여 있는 입구를 열자 전력구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지하 31m, 길이 330m에 달하는 이 샛강 전력구는 배전선로가 지나는 길이다. 한전 남서울본부 전력사업처가 맡고 있는 지중배전선로 현장, 오늘 완벽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점검에 나선 점검팀과 동행 취재가 시작된다. 글. 황지영 / 사진. 이원재(Bomb스튜디오)
빈틈없는
‘땅 속 선로 점검’,
우리 곁의
편리한 전기로 오다
지중배전선로 점검 현장
전기는 선로를 통해 우리 곁으로 와 편리한 생활을 만들어 준다. 전기가 오는 길, 전기선로는 전주로 이어진 공중선로와 땅 밑 전력구로 오는 지중선로가 있다. 흔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전기선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공중선로이고, 전체 선로의 20.3%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 밑으로 전기를 보내는 지중선로이다.
오늘 남서울본부 전력사업처 지중설비부 이현덕 차장과 박성윤 대리가 점검에 나선 선로는 여의도 샛강 전력구 지중배전선로다. 입구는 전력구 아래로 내려가는 긴 사다리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돌아 31m를 내려가 스위치를 올리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육중한 선로가 힘차게 뻗어 있다.
이 땅 밑의 선로들을 통해 온 전기는 집안의 전등을 켜고, 냉장고를 돌아가게 하고, 전기자동차를 충전하게 한다. 잠깐의 정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들은 예리한 시선으로 완벽한 전력공급의 근거인 배전선로 점검을 시작한다.
“전력설비에는 전기시설인 케이블뿐 아니라 소방, 환기, 배수 등의 다양한 부대설비들이 있습니다. 정기 점검은 한 달에 한 번 이뤄지지만 각각의 점검은 필요한 때 수시로 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요 점검은 전력 케이블 접속 부분에 대한 열화상 점검이다. 케이블이 서로 이어지는 부분은 접속 상태가 안 좋거나 빈틈이 발생하면 절연 파괴와 함께 온도가 상승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열화상 진단은 주변보다 온도가 높은 부분을 찾아내는 사고 예방 점검 작업이다. 미리 위험한 부분을 바로 잡아낼 수 있는 첨단의 방법이다. 이현덕 차장이 케이블 접속 부분의 위쪽 벽면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화재감지 센서와 소화기입니다. 센서에 이상이 감지되면 소화기가 저절로 분사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케이블 보호와 고장 예방을 위해서는 VLF(Very Low Frequency)*진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LF는 저주파의 신호를 통해 케이블 절연체의 노후도와 부분 방전 수치를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이 작업은 사전 정전 예방이 가능한, 중요한 점검입니다.”
*VLF : 0.01~1Hz 범위의 낮은 주파수의 전파.
전력구 안의 지중배전선로를 점검하고 있는 이현덕 차장(왼쪽)과 박성윤 대리
케이블의 접속 부분 열화상 점검을 마친 이들. 케이블 부분에서 열이 나는지 체크하며 고장을 예방하는 활동이다.
지중선로 점검은 지상으로 노출된 전력설비 점검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좁고 어두운 지하에서 점검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동 중에 부딪히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하고, 먼지도 많아서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지하 10층 이하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튼튼한 체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이들의 불편과 손해를 불러왔던 지난 2018년 말 서울 마포의 통신구 화재는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지하 시설물의 안전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각을 울린 사례였다. 통신구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은 전력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이는 커다란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예방점검 활동에 날마다 완벽을 기하고 있는 이유이다. “국민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를 안전하게 공급한다는 책임감과 보람이야말로 어려운 근무환경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대형 화재에 대비하여 공동구 안의 전력케이블을 불에 타지 않는 소재의 ‘난연 케이블’로 교체하는 공사를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난연 커버를 전력구 안의 접속 장소에 설치해 화재발생을 막을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위험이 있는 현장을 직접 점검하는 일이다. 건설공사 현장 지역을 매일 순시하고 돌아보며 공사현장에서 전력설비를 손상시키는 사고가 없도록 관리하는 일도 중요한 업무의 하나다.
여의도 샛강 전력구를 관할하는 한전 남서울본부는 서울 한강 남쪽의 11개 구와 과천시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대표하는 국회, 무역센터, 증권거래소 등 주요 기관의 비중이 매우 높은 곳이다. 그만큼 전력고장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이어서 예방활동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남서울본부는 배전설비 지중화율(60.07%)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만큼 특히 지중설비 운영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고 우리나라 중심부의 전력을 책임지고 있다.
박성윤 대리는 “전력설비는 우리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설비인 만큼 주위에 보이는 설비에 조금만 더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길을 가다 보면 전신주나 개폐기, 변압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심코 버리는 담배꽁초 같은 작은 쓰레기가 설비 고장이나 화재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민 모두 안전하고 깨끗한 설비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누구나 위험해 보이는 전력설비를 발견하면 꼭 한전에 신고해서 안전사고와 정전을 예방하는 지킴이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서울본부 전력사업처 지중설비부 직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