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EE(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는 정전시간과 송배전 손실률, 규정 전압과 주파수 유지율 등을 국제지표로 운영하고 있다. 그 기준에 따라 규정 전압과 주파수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 고품질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전기의 주파수와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고품질 전기의 필수 요소다. 전압과 주파수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면 가전제품이나 공장의 기계 고장이 빈번해질 수 있고, 반도체와 같은 예민한 제품은 생산조차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규정 전압유지율 99.9%, 주파수유지율 99.9%로 최고 수준의 전기 품질을 보여준다. 전압과 주파수의 적은 오차와 균일한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전기사업법 등 기준을 법체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표준전압은 110V±6V, 220V±13V, 380V±38V로, 주파수는 60Hz±0.2Hz로 규정하고 있다. 60Hz 주파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수요에 맞게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송배전 인프라와 전력 생산량을 수요·공급에 맞춰 조절하는 발전소의 역할이 크다.
지금은 당연하게 220V 전압을 사용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격 전압은 110V였다.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과부하로 정전이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다. 믹서기나 드라이기를 사용하다 보면 퓨즈가 나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전은 전력 공급 능력을 높이고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1973년부터 2005년까지 ‘표준전압 승압사업’을 실시했다. 110V에서 220V로 승압을 하면 배전선로 전력손실이 75%가량 감소하는데, 이는 매년 40억kWh의 전력을 절약하는 방법이었다. 연인원 757만 명을 동원해 진행한 승압 사업은 3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배전 설비를 늘리지 않고도 전력 공급 능력을 높이면서 설치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 220V 승압 성공으로 개인 소비자들은 대용량 가전제품을 동시에 여러 개를 사용하게 됐으며 전력손실과 전기료 절감으로 산업 발전에도 날개를 달게 됐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한국전력공사는 2006년에 세계 전력 산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에디슨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기의 품질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 정전의 횟수와 시간이다. 전기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기게 되면 생활의 불편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 그리고 안전과 관련해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호당 정전시간은 2022년 기준 9.05분을 기록했다. 1년에 한 집 평균 9분 가량 정전이 된 것으로 하루 약 2초가 안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국내 전기 사용자는 정전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호당 정전시간이 미국 44분, 영국 38분, 프랑스 49분에 달한다. 다수의 선진국과 최대 5배가량 차이가 날 정도로, 한전은 어떻게 정전을 대비하는 것일까? 전국 200개가 넘는 한전 지사에서는 정전에 신속하게 대처해 복구할 수 있도록 24시간 설비담당이 대기하고 있다. 자연재해에 의한 설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중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최근에는 IoT, 빅데이터, AI 기술 등을 활용하여 전력 설비를 사전에 체크하고 진단해 고장을 예방하고 있다.
전기 품질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는 송배전 손실률이다. 송배전 손실률이란 발전소에서 발생한 전기가 변압기와 송·배전선로를 거쳐 최종 소비처까지 올 때 발생하는 전력의 손실 비율이다. 손실률이 적을수록 낭비되는 전력이 적고 관리가 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기의 품질과 연결 짓는 것이다. 2020년 해외전기사업통계(JEPIC)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송배전 손실률은 3.53%이다. 미국(5.4%), 영국(8.4%), 일본(4.6%), 프랑스(7.7%) 등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손실률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송배전 손실률을 기록하기 위해 한전은 1차적으로 전력 공급의 과정에서 전기 수송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송배전 및 변전 설비를 촘촘하게 연결했다. 또한 loT 기술을 활용해 선로의 고장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빅데이터 분석으로 고장 징후를 미리 파악해 제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 알리바바 클라우드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외국 기업들의 데이터센터가
국내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의 안정적인 통신망과 우수한 국내 인력도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고품질 저비용의 조건을 갖춘 우리나라 전기의 우수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반갑기만한 소식은 아니다.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리는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국에 187개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숙명과도 같은 전력난에 대한 또 한 번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