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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

K-REPORT
136년 전 시작된
한국 전기 역사의 발자취
아시아 최초로 전깃불이 켜진 곳은 한반도다. 일본과 중국보다 무려 2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우리의 전기 역사는 곧 아시아의 전기 역사다. 136년이란 시간을 밝혀왔던 한국 전기의 결정적 순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글. 김진철 에너지타임즈 편집국장

최초의 전기, 건청궁을 밝히다

조선 후기 고종은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며 청·일본·미국 등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사절단을 파견했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규(朝美修好通商條規) 체결 이후 이뤄진 보빙사 파견은 조선의 제도와 사회체계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20대 개화파 청년으로 구성된 보빙사는 미국을 방문해 전기회사와 철도회사, 병원, 소방서 등 근대적 국가시설 등을 둘러봤고, 이를 계기로 경복궁 전등을 켜는 계획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에 발전설비와 전등기기 일체를 발주한 후, 고종 24년인 1887년 3월 6일 전등소가 경복궁에 설치됐고, 건청궁에 최초로 전깃불이 켜졌다. 향원정 연못 물을 냉각수로 활용하다 보니 온배수가 연못에 유입됐고, 높아진 수온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게다가 성능이 완전치 못해 자주 불이 꺼지기도 했으며 유지비가 많이 들어 전깃불이 건달에 비유되기도 했다.

건청궁에서 최초로 들어온 전깃불을 형상화한 모형 @전기박물관

전차를 따라 켜진, 거리 위 전깃불

궁궐이 아니라 길거리에 전깃불이 켜진 날은 언제였을까. 1898년 1월 전기사업을 위해 한성전기(주)가 설립됐고, 이듬해 5월 전차가 처음으로 동대문과 홍화문(現 서대문) 구간을 시험 운행했다. 인천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경인선이 개통되기 4개월 전의 일인데 당시 한양의 교통수단이 인력거와 자전거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교통의 혁명이라 불릴만한 사건이었다. 차비는 엽전 5전이었고 정류장이 없어 승객이 손을 들면 승차할 수 있었다.
특히 한성전기(주)는 전차의 야간 운행을 위해 전등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동대문에 발전설비용량 200kW급 발전소를 건설한 뒤 전력을 공급했다. 그리고 1900년 4월 10일 최초로 길거리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불특정 다수가 전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국내 최초 전차 @국사편찬위원회

전력 수급 위기 속 한국전력주식회사 출범

1948년 5·10 총선으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열됐고, 그로부터 4일 뒤 북한은 남한으로 공급되던 전기를 끊어버렸다. 호롱불과 촛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남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5만 8,000kW에 불과했다. 해방 전후로 한반도 발전원 중 수력발전 비중은 90% 이상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광산에 전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수력발전이 대거 건설됐고, 이 광산 대부분이 북한에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한의 전력수급난은 더 심각해졌다. 7만 3,557kW이던 발전설비 용량이 전쟁이 터지고 2개월 만에 1만 1,333kW로 떨어졌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접어들면서 남한을 대표하는 조선전기·경성전기·남성전기 등 전력회사가 나섰지만 전쟁 인플레이션 등으로 복구는 녹록지 않았다. 정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전기·경성전기·남성전기 등을 통합하고자 했지만, 흐지부지 되고 10년이 지난 1961년에야 통합되며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하게 됐다. 한전이 출범할 당시 남한의 전력수급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한전은 발전설비 등 전력설비를 보강해 출범 3년 만이자 광복 19년 만에 제한 송전에서 무제한 송전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단전된 서울의 야경 @국사편찬위원회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 현판식 @국사편찬위원회

고품질, 안정적 전기 보급의 시대를 열다

무제한 송전이 가능해진 이듬해 1965년 12월부터 농어촌전화(電化)사업에 매진하면서 농어촌과 산촌, 섬마을 등 12%에 그쳤던 전기 보급률이 사업이 끝날 무렵인 1979년에는 98%까지 높아졌다. 전기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데는 1978년 고리원자력발전소 준공을 빼놓을 수 없다. 587㎿ 규모의 고리1호기를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전 보유국 대열에 올라서게 됐다.
1982년 한국전력주식회사에서 한국전력공사로 개편하면서 국내용 전력사업의 무대는 세계로 넓혀졌다. 1995년 필리핀 말라야 화력발전소 성능복구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아시아, 중동, 중남미, 북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24개국에서 49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에너지 기업으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또 한 번 우리나라의 전기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순간은 2003년 765kV 송전망을 구축한 것이다. 1976년 345kV 운전 개시 후 26년여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345kV보다 전력수송 면에서 5배가량 용이해졌으며, 전력손실도 기존에 비해 20% 수준에 머물며 뛰어난 경제성을 실현했다. 765kV 송전망은 송전용량 증가뿐만 아니라 대전력 수송체계 구축을 통해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전력공급의 안전성을 높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제 한전은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해상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보급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른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계통 보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