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김선교입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R&D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 및 사업을 평가하는 기관인데요. 저는 에너지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을 당시 스마트그리드 등 IT 기술로 에너지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했고,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재직 시에도 관련 연구를 이어 나갔습니다. 에너지 기술을 넘어 에너지 산업과 관련 분야 전반에 대해 두루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 당시 이런 발자취와 노력을 높게 산 제작진이 ‘에너지 덕후’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더라고요.
에너지 변천사의 시작은 불이라는 ‘찰나의 우연’에서 시작됐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번개 혹은 자연적인 산불로 인해 발생한 불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했을 겁니다. 불이라는 열에너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얻게 된 순간, 어둠이 주는 두려움과 추위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음식을 익혀 먹게 됐죠. 또한 광물에서 금속을 추출해 청동기와 철기를 만들어 문명을 발전시키고 활동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이후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증기기관을 작동시키면서 문명의 발전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1900년 초중반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950년대부터는 석유가 주 에너지원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액체연료의 특성상 저장·이송 등이 편리했고 에너지 밀도도 석탄보다 높았으니까요. 이에 따라 석유를 동력으로 삼는 내연기관이 발전했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석탄·석유·천연가스 등의 에너지원을 더욱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변환한 2차 에너지로 불리는 전기 역시 발명돼 확산됐는데요. 오늘날 인류는 에너지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죠.
정확하게 말하면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주원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기후변화는 산업혁명과 동시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정도는 화석연료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화석연료 사용을 막는다면 세상과 문명은 그 즉시 멈추게 됩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해요. 현재로서 이 조건을 충족하는 에너지원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하 원전), 단 2개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를 전기로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자동차도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죠.
이렇듯 에너지원이 전기라는 2차 에너지로 빠르게 통합되면서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전기를 깨끗하게 생산할 것인가?’로 한결 단순해졌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로드맵에서는 2050년까지 사용 전기의 9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하려면 간헐성과 불확실성이라는 2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면 수요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공급량 조절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합니다. 남는 전기를 ESS에 저장했다가 밤이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죠. 재생에너지와 배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현재 전기차와 ESS를 중심으로 배터리의 저장 용량과 안전성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는 사업모델과 혁신사례들도 쌓이고 있습니다.
한편 2050년 탄소중립의 또 다른 축인 원전의 경우,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 등 원전 선진국이 원자로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여 안전성을 극대화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나서고 있어 미래의 전력 수요 일부를 더욱 안전하게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2000년대 초반 3~5%였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여 년 만에 40%로 빠르게 끌어올렸고, 중국의 재생에너지 비율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10%에 못 미치는데요. 물론 우리나라 역시 원전 에너지 비중과 탄소중립 기여도를 높이는 합리적 에너지 믹스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할 소위 ‘에너지 부채’는 점점 커질 것이고,
국가와 국민의 부담도
이에 비례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를 위한 지원과 투자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빠르게, 지속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송전, 배전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연결해주는 전력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시급합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전기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인식 전환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발전량의 약 70%를 화석연료에서 얻음으로써 전기료에 대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는데요. 이 상황이 소비자에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탄소를 많이 배출한 국가와 기업에 탄소세를 매겨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낮추는 동시에 탄소중립을 실행에 옮기라고 압박할 것입니다. 탄소중립에 미진한 국가들의 경제와 산업에 입은 타격은 국민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며, 당연히 전기료도 급격하게 오를 겁니다.
결국 에너지 전환은 앞으로 우리 모두가 먹고사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게 될 국가 차원의 핵심 과제입니다.
전력 소비자인 국민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를 살리는
에너지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