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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 LIFE

PEOPLE 1
생존을 위한 이유 있는 오지랖
‘함께’가 이룬 에너지 마을의 기적
성대골 에너지슈퍼마켙
에너지전환마을 성대골의 10여 년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나간 시간들이었다. 재래시장의 비닐봉지 일몰제, 태양광 설비로 학교와 상가의 에너지 생산, 자투리땅을 활용한 배추 심기, 기후 위기 식단 수업까지! 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원초적인 감정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미래가 자명한 상황에서 성대골의 어른들은 ‘타협할 수 없는 오늘’에 대해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다.
글. 편집실, 사진. 안지섭
에너지 절약 제품, 마을 공유 공구들, 기후 위기에 대한 아이들의 메시지가 있는 에너지슈퍼마켙
에너지슈퍼마켙 김소영 대표

협동조합과 거리 축제, 함께하는 에너지 전환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서울시 동작구 상도3·4동을 기반으로 한 성대골은 ‘마을’이란 이름이 제 몫을 하고 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성대골에서는 ‘에너지 자립에 마을만 한 곳이 없다’로 통한다. 절전소 운영부터 태양광발전소 설치, 기후 위기 운동, 에너지 축제 등 10여 년에 걸쳐 진행된 모든 활동이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만 이뤄졌단 사실은 동화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성대골 이야기의 첫 단추인 에너지슈퍼마켙 김소영 대표는 그저 평범한 직장맘이었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 때문에 복직을 미룬 1년 동안 그는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대골의 구조를 들여다보게 된 것!
“40만 인구가 사는 동작구에 어린이도서관이 단 네 곳 뿐이었어요. 아이들을 위해 주민들이 모여 모금을 주도했고, 2010년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열게 됐죠. 그리고 몇 달 후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뉴스를 접하게 됐어요. 대재앙이라 불리는 방사능 누출 앞에서 두려움이 엄습했죠. 잠을 못 이룰 정도였어요. 소비만 하는데 그쳤던 에너지에 대해 알아봐야 했어요. 우리가 이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주민들은 성대골어린이도서관에 모여 강의를 듣고 에너지 전환의 시급성에 공감했다.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은 아끼는 것이었다. ‘에너지 절약이 곧 생산’이란 슬로건을 내건 절전발전소! 가정마다 매월 사용한 전기사용량을 그래프로 그려 시각적으로 확인하자, 평균 10~15%를 절감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 시작된 에너지 절약 프로젝트는 상점과 학교로 확산됐다. 가게마다 전구를 LED로 바꾸고, 간판 타이머를 설치했으며 학교에는 에너지 동아리가 생겨나고 에너지 전환 교육이 정규 수업으로 채택됐다. 들불처럼 번진 성대골의 에너지 바람은 순차적으로 생겨난 4개의 협동조합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거리 축제를 활용한 문화로 자리를 잡아갔다.

성대골 전통시장에서 함께하는 비닐봉지 일몰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바구니
성대골 에너지전환 주요 활동

성대골 초입에 위치한 대륙서점과 성대골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에너지슈퍼마’이 합쳐져 ‘성대골 전환센터’가 됐다.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주민들의 ‘에너지전환’ 활동을 논의하는 곳이자, 에너지 절약 및 기후 위기와 관련한 책자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2010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어린이 도서관으로 에너지 활동의 거점이 됐다. 현재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 내 작가들과 협업해 마을 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강의도 진행 중이다.

성대골에서는 상인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성대전통시장 상인회에 속한 40%의 상인들이 건물주를 설득해 입주한 건물의 옥상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하도록 했으며, 수년간 비닐봉지 일몰제를 실천하며 장바구니 사용에 앞장서고 있다.

생태/에너지전환 교육을 하고 있는 국사봉중학교는 환경 동아리 외에도 다수의 학생이 기후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학생과 교사가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 및 관리하고 있으며 교내에 생태전환 카페와 매점도 운영 중이다.

기후 위기 홍보 활동에 참여한 마을 학생들
성대골 국사봉중학교 협동조합 태양광

에너지슈퍼마켙, 에너지 문제 소통의 광장

단발성으로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기 위해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2013년 마을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설립해 주택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미니 태양광 설치 등을 추진한 성대골. 이듬해 1월에는 에너지 자립과 기후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에너지슈퍼마켙’이 문을 열었다. LED 전구며 태양광 충전기 등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주민이라면 누구나 들러 에너지 문제에 대해 함께 논하는 열린 소통의 광장이다.
성대골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지속성을 얻는데, 학교는 좋은 허브가 되어 줬다. 착한가게 캠페인을 비롯해 에너지 축제, 각종 에너지 전환 관련 서명 운동까지 학생들은 활동의 중심에서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6년에는 국사봉중학교 내 사회협동조합이 생겨났으며 향후 성대골 청소년으로만 이뤄진 협동조합도 계획 중이다.
“학교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태양광 패널 주인은 선생님과 학생들이에요. 햇빛이 쨍한 날에는 아이들이 하늘에서 ‘돈 내려온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죠.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중개시장에 판매하며 이익을 내고 있어요. 에너지 생산의 주체가 된 아이들은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시세까지 체크할 정도랍니다.”
이처럼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통해 얻은 수익을 지역 사업에 다시 활용하는 ‘가상발전소 사업’은 2018년에 출범한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에서 추진 중이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었기에 개인의 노력은 가정과 학교로, 그리고 지역 전체로 이어졌다. 때론 함께의 힘은 기적 같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학생들과 함께 버려지고 오염된 성대골의 자투리땅을 찾아 배추와 무의 모종을 심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인근 어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살뜰히 가꿔줬다. 잘 자란 작물을 가지고 지난해 겨울 성대골은 도심 한복판에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확한 작물로 김장해 소외 계층을 위한 나눔으로까지 이어졌다. 가치 있는 행동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아이도 어른도 마을 안에서 성공의 경험치를 채워가고 있다.
“장바구니를 쓰고, LED로 바꾸고, 베란다에 태양광을 설치했다고 본인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에요. 작은 실천에 만족하지 마세요. 이제 첫 단추를 채운 거니까요. 자신의 선행을 SNS에 알리고 이웃에게 말하세요. 칭찬을 받아 기쁨을 느끼고, 좋은 거라고 추천하세요. 주변을 물들이다 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보게 될 거예요. 편안함과 타협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희망해봅니다.”

자투리 땅을 활용한 작물 가꾸기와 수확 후, 김장 담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