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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K-POP

K-REPORT
K-POP을 이끄는 힘,
팬덤과 세계관
BTS가 2021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4관왕에 오르고,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 100억 뷰를 기록했다.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K-POP은 분명 중심에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K-POP은 가장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장르이다. 어떤 장르를 섞든 새롭고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개방적인 면이 K-POP의 지속적인 인기 비결이다. 또한 거대하게 형성된 글로벌 팬덤은 K-POP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글. 음악평론가 김영대

K-POP의 시작, 생명력 불어넣는 체계적 시스템

2000년대 초반, 세계 진출에 도전장을 내민 K-POP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로 나아가기 위해 체질 변화가 필요했다. 주먹구구식의 가수 양성이 아닌,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했고, 그 시작은 SM 엔터테인먼트의 ‘현지화 기술(Localization)’이었다. 현지인에게 최적화된 음악을 전달하며 성공의 문을 열었다. 현지화 기술 기반의 K-POP은 언어, 문화권, 지역 등의 차이를 극복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 1세대 보아를 시작으로 한 현지화 과정은 블랙핑크와 트와이스처럼 현지 멤버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무엇보다 K-POP 산업에서 배제할 수 없는 핵심적 요소는 ‘송 캠프(Song camp)’ 시스템이다. 1960년대 베리 골디(Berry Gordy)가 설립한 흑인 음악 레이블 ‘모타운(Motown)’에서 처음 시작된 송 캠프는 훈련소 스타일의 집단 창작 방식이다. 한 팀을 이룬 송 캠프의 작곡가들은 기획사의 요구에 맞춰 공동으로 곡을 만든다. 현재 K-POP 작곡가에 다수의 이름이 오른 이유는 송 캠프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비트, 멜로디 등 가장 최적화된 작곡가들이 분업으로 탄탄한 음악을 완성한 것이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재창조되는 독특한 K-POP의 사운드는 인종이나 지역에 근거한 장르나 범주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곧 K-POP에 트렌디함이란 생명력을 안겨줬다.

강력한 팬덤, K-POP의 지속가능한 원동력

K-POP 산업에서는 충성도 높은 고관여층 소비자들이 절대적이고 열성적인 지지를 보여준다. 고관여층 팬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홍보하는 등 음악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이것이 K-산업의 새로운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팬덤의 규모나 응집력도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다. 현재 K-POP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유는 미국처럼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이 있거나 일본처럼 탄탄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K-POP은 소수지만 열광적인 고관여층 팬덤의 지원 속에 성장했고, 이들을 만족시키는 대단히 마니악한 방식으로 세를 불려온 산업이다. K-POP에 있어서 파악하기 어려운 ‘일반 대중’이란 존재는 일종의 허수이거나 혹은 존재하긴 해도 큰 변수가 되지 못하는 이들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K-POP의 한계인 동시에 K-POP만의 장점이 된다. 그들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방식보다는 난해하긴 해도 확실한 팬층을 보유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고자 했고, 어쨌든 그것이 현재까지 K-POP이 성공해 온 가장 중요한 방식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고관여층’ 집중 전략은 메타버스와 NFT와 같은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도 K-POP의 우위를 전망케하는 이유기도 하다. 음악 만들기의 프로세스가 균질화된 현재 음악산업에서 음악과 퍼포먼스만으로는 차별화가 그리 쉽지 않다. 결국 핵심은 아티스트의 독특한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대중들을 설득해 낼 것이냐 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차별화된 서사를 이루는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상과 현실 넘나들며 확장되는 세계관

현재 K-POP이 몰두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을 꼽는다면 바로 ‘세계관’이다. 그런데 도대체 세계관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래 세계관(worldview)이란 말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이나 틀을 의미한다. K-POP이 말하는 세계관은 이와는 달리 가수가 가진 가상의 인격이나 예술적 자아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 혹은 설정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이나 영화에서 말하는 ‘유니버스’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
21세기 최고의 팝 그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방탄소년단 역시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성장한 그룹이다. BTS의 세계관은 문학적이고 환상적이며 때로는 매우 현실적인 설정을 담고 있다. BU(BTS Universe)는 팬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무대 위 스타의 삶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서사가 아니라, 동시대 청년들의 보편적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어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BTS는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연작 형식으로 확장했다. 데뷔부터 시작된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는 성장 과정을 보여줬다. 여기서 전하는 BTS 세계관에는 보편성과 건강함이 있다. ‘Epilogue: Young Forever’와 ‘봄날’ 등의 노래에서는 상처 받기 쉬운 청춘의 좌절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K-POP의 가장 큰 약점이던 메시지의 진정성과 태도의 한계를 극복해낸 사례다.
첨단 산업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세계관은 ‘에스파’로도 보여진다. 가상세계 멤버와 한 팀을 이룬 그룹 에스파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주목받고 있다. 언뜻 비디오 게임의 설정이나 공상과학 작품의 시놉시스를 연상시키는 용어들은 ‘에스파’의 세계관 속 기본 설정이다. ‘메타버스’ 아이돌을 표방하며 데뷔한 에스파가 다른 그룹과의 뚜렷한 차별화는 ‘세계관’이라 불리는 서사의 배경 혹은 설정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활동을 해 나가면서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와 포맷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난해해 보이지만 이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는 팬덤은 K-POP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K-POP은 음악과 춤이 아닌 ‘이야기’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