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보유한 전력설비와 첨단기술 인프라로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을 개발해서 화제다. 지난 연말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한국전력에 안겨준 ICT기획처 인프라계획실을 만나보고, 경북본부의 산불조기대응시스템 설치 현장을 찾았다.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이 설치된 송전철탑 앞에 선 한전 담당자들.
최근 산불의 위력이 심상치 않다. 해외에서는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하와이를 초토화시키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2019년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나 2022년 울진 삼척 산불, 2023년 강릉산불 등 역대급 대형 산불이 빈번한 실정이다. 한번 발생하면 무서운 속도로 온 산을 태우며, 막대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산불은 조기에 발견해 진압하는 것이 관건이다. 건조한 날씨 탓에 대형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3월을 맞아 한전이 개발한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이 설치됐다는 한전 경북본부 현장을 찾았다.
굽이치는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거대한 송전철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 능선을 따라 도열한 철탑 사이로 전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지으며 이어진다. 철탑 중간쯤 소형 태양광 패널들이 먼저 눈에 띄고, 철탑 뒤쪽 한켠에 고성능 감시 카메라가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철탑 하단에는 산불분석장치가 자리했다.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이 설치된 송전선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안동변전소 이곳에서는 감시 카메라로 수집된 산불 관련 정보들을 클라우드로 받아서 AI 기반 기술을 활용해 분석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제어실 전면의 화면에는 산불 발생 지점의 기후, 지리정보 등 빅데이터가 표시되며 고성능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영상을 확대해 볼 수 있다.
AI 기반 분석기술로 정확도 높이다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은 한전이 보유한 송전철탑과 기지국 등에 산불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산불을 감시하고, 취득된 영상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산불 발생 가능성을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예측하는 조기탐지기술이다.
사실, 기존에도 산림청이 CCTV를 설치해 산불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산악 지역에 CCTV를 설치하려면 구조물, 전원, 네트워크 등을 새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또 안개와 조명 등의 요인을 산불로 인식하는 식별 오류가 빈번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한전이 전력 인프라를 활용한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지대나 구조물 설치가 어려운 산악 지대에 자리한 한전의 무선기지국과 송전철탑에 실화상과 열화상 인식이 가능한 고성능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송전철탑에는 산불을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AI 기법을 통해 분석할 수 있는 에지(edge)형 산불분석장치도 설치했다. 무선기지국과 송전철탑의 카메라에서 수집된 산불 관련 빅데이터는 분석장치나 클라우드에 보내지며, 앙상블 기법 등 첨단 AI 기법으로 분석의 정확도를 높인다. 분석 결과 산불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해 신속한 대응을 지원한다.
아무래도 정부 협업 사업인 만큼 시스템을 개발해 시범 설치하기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감대 형성과 의사결정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 본사와 사업소 담당자들은 화상 또는 방문 미팅을 수없이 하며 적극적으로 사업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또 관련 기관 간 양해각서를 체결해 공식적 협력관계를 이끌어내며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한 노력을 펼친 결과 산림청, 소방청, 경북도청 등 정부 기관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민간 수행업체의 기술과 인프라가 결합된 팀 코리아 실무 모델을 실현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산불조기대응시스템으로 2023년 11월 8일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개최된 2023년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해내기도 했다.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을 개발한 ICT기획처 인프라계획실과 시스템이 설치된 선로를 관리하는 경북본부 전자제어부원들이 함께 했다.
산불 잡아 국민안전 지키고, 수출길까지 뚫는다
이 같은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은 한전의 인프라와 플랫폼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산불관제CCTV를 구축할 경우와 비교하면 50% 이상의 투자비 절감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이며, AI 기반 지능형 산불감시를 통해 약 99%의 탐지 정확도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전은 산불조기대응시스템을 충북, 광주·전남, 경북 지역의 철탑과 기지국 등 25개소에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앞으로 한전은 산림청, 지자체의 협업을 이끌어내어, 한전이 보유한 약 2만여 개의 산악지형에 자리한 철탑과 기지국을 활용해 전국적인 산불감시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시스템에 대한 성과를 분석하고 제품화해 개발도상국과 같은 산불 취약국가를 대상으로 한 기술이전과 컨설팅으로 지능형 감시, 데이터 분석 분야의 수출 활로를 개척할 예정이다. 특히, ICT기획처 인프라계획실에서는 2024년 4월에 열리는 UN ESCAP 제80차 총회에 참석하고 우수 사례를 발표하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시스템 홍보에 박차를 가해 제품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처럼 한전은 새로운 시각으로 전력산업의 경계를 넘어 국가 재난 안전에 기여해 국민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