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00만 년 전 운석 충돌로 멸종한 공룡, 무분별한 사냥으로 1681년에 멸종한 새 도도와 1768년에 멸종한 스텔러바다소는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삼림 감소와 서식처 부족으로 1990년대 이후로 관찰되지 않는 크낙새는 세계적으로 볼 때 완전히 멸종되지는 않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한 지 35억 년, 지구의 생물들은 멸종을 반복해왔다.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지질시대에는 급격한 환경 변화와 지각변동으로 생물들이 멸종했다. 500만 년 전 인류의 등장 이후에는 고기와 가죽 등을 위한 남획, 농경지 및 주거지 확보를 위한 개발,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생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심각한 사실은 이미 군데군데 드러나 있는 생태계의 빈자리로도 모자라 다음 빈자리의 위험에 처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꾸준히,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자원·자연의 관리,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5년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고서인 ‘레드리스트(Red list, 적색목록)’를 발간하여 그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보호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레드리스트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약 970종의 야생생물이 멸종 또는 야생멸종(동물원에서는 볼 수 있으나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상태) 되었고, 4만 종 이상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하게 체감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동물 49종, 식물 11종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동물 127종, 식물 77종을 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생물들 대부분은 우리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인간에 의한 위협에 계속 노출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를 경고하듯 지난해 3월 국립생태원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자료집에 따르면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고 기후변화가 악화할 경우 21세기 말에는 국내 생물종의 6%에 해당하는 336종이 멸종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측 기록이 남아있는 첫해인 1880년 대비 한반도의 기온이 평균 4.5도 이상이 되면 생태계 교란 등 다양한 문제점으로 인해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하는 동식물이 지금보다도 훨씬 늘어나게 된다. 특히 기온은 야생동물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직접적으로는 야생동물의 체온에 관여해 대사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간접적으로는 서식 환경을 변화시켜 야생동물의 개체군 감소 혹은 멸종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국내 자생 멸종위기 동물 중 하늘다람쥐, 까막딱따구리 등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종으로 꼽힌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온실기체 증가 추세가 저감 없이 앞으로 지속될 것을 가정한 가장 부정적인 시나리오(RCP8.5)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온실기체 저감 정책이 매우 적극적으로 실현될 것을 가정한 희망적인 시나리오(RCP4.5)에서마저 취약한 종으로 구분돼 사실상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기온에 민감하지 않은 야생동물은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할까. 국립생태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온 민감종으로 판단되지 않더라도 국내에 분포하는 개체 수가 적어서 서식 환경 변화만으로도 사라질 위험에 처한 동물이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륙사슴과 사향노루, 토끼박쥐 등 3종의 포유류, 개리와 재두루미, 두루미 등 3종의 조류, 양서파충류인 수원청개구리, 멋조롱박딱정벌레와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곤충류 3종 등 총 10종이 그것이다. 이 중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6호에 지정된 사향노루는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환경 변화에 인간의 탐욕까지 더해져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사향노루의 사향이 지닌 약리적 효용성 때문에 오랜 기간 사냥의 대상이 되어온 까닭이다. 이제는 깊은 산속에서조차 보기 힘든 희귀 동물이 된 사향노루는 자연적으로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인위적 복원 노력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실행된다 해도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 환경의 훼손과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이 멈추지 않으면 좀처럼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멸종위기 곤충 중 하나인 붉은점모시나비는 기본적으로 외부 온도에 자신의 체온을 맞추며 살아가는 변온동물인데다 겨울이 주 활동기일 만큼 추위에 강하다. 붉은점모시나비는 아주 낮은 온도까지 얼지 않도록 조절하는 내한성이 발달했는데, 영하 48도까지도 끄떡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여름잠을 자고 겨울에 부화하는 붉은점모시나비는 더위에 민감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좀 더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이들의 먹이인 기린초 서식지가 각종 개발로 줄어들고, 인간의 채집까지 늘어나면서 201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에 지정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은 단지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생 식물의 자리도 빼앗고 있다. 지난 100년간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진 우리나라의 기온은 해발고도 1,200m 이상에서 주로 분포하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등 북방형 침엽수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온 상승에 따라 겨울철 광합성이 활발해지면서 광합성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 결국 집단 고사하고 만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침엽수림인 한라산의 구상나무 군락은 90%가 고사했으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의 침엽수가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그곳에 살던 토종 야생동물들의 서식지 훼손으로 이어져 더욱 심각한 멸종위기를 초래했다.
이처럼 한 생물종이 사라지면 다른 종도 연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인다. 이 불행의 도미노에서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당장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물을 저장하는 나무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 홍수와 가뭄, 병해충으로 인한 농업의 피해를 비껴갈 수 없다. 생물 자원에 70% 이상 의존하던 의약품 원료 생산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붕괴는 이렇듯 인류의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로부터 구해야 하는 건 멸종위기 동식물이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우리여야 하고, 이러한 노력은 지금 바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