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흙벽돌로 짓고 있는 자택의 테라스에 선 김순웅 교수

고강도 흙벽돌로 짓고 있는 자택의 테라스에 선 김순웅 교수

테마 인터뷰 2

모든 흙이 훌륭한 건축재료

한국흙건축학교 교장 김순웅

세상 만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결국 흙은 근원이며 동시에 자연 그 자체다. 목포에 실습장을 둔 한국흙건축학교 교장 김순웅 교수는 시멘트, 철근같은 근현대 건축 재료 대신 흙을 택했다. 지구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흙집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강진우(자유기고가) 사진 이원재(Bomb Studio)

(왼쪽)흙과 모래, 석회와 물을 일정 비율로 섞은 뒤 강한 압력을 가해 만든 고강도 흙벽돌. 한국흙건축연구소에서 직접 연구, 개발했다. (오른쪽)흙다짐으로 벽을 세울 때, 흙을 눌러 단단하게 다지는 역할을 하는 전통 다짐기

(왼쪽)흙과 모래, 석회와 물을 일정 비율로 섞은 뒤 강한 압력을 가해 만든 고강도 흙벽돌. 한국흙건축연구소에서 직접 연구, 개발했다.
(오른쪽)흙다짐으로 벽을 세울 때, 흙을 눌러 단단하게 다지는 역할을 하는 전통 다짐기

“흙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수성이 담겨 있어요.” 김순웅 교수는 의외로 흙의 과학적 효과 대신 흙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흙과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살을 맞대 온 만큼 흙을 향한 친숙함과 그리움이 우리의 DNA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목포대학교 학생들에게 흙건축을 가르치면서 이 점을 깨달았어요. 흙을 만지며 살아온 세대가 아니라서 아무래도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흙조차 만지기 싫어해요.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흙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더란 말이죠. 또, 흙집에 들어가면 아파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해요. 이런 서정성과 더불어 습도 조절, 탈취 성능, 원적외선 방출 등 흙집의 과학적 효과도 입증돼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흔히들 흙집에는 황토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순웅 교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강도 확보를 위해 모래와 석회를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그뿐, 주변의 모든 흙이 훌륭한 건축 재료라는 것이다. “굳이 전라도 흙을 강원도까지 가져가서 쓸 필요 있나요? 도처에 널려 있는 게 흙인 걸요.” 듣고 보니 우리 주변이 모두 흙이라는 사실이 새삼 새롭고 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소중함을 물속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건축 재료로서의 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흙이 선사하는 에너지와 감수성이 우리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김순웅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공수한 황토가 아닌, 자택 공사 현장 인근에 널려 있는 황토를 흙집 재료로 활용한다.

김순웅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공수한 황토가 아닌, 자택 공사 현장 인근에 널려 있는 황토를 흙집 재료로 활용한다.

한편, 시멘트를 만들 때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쇠를 녹여 철근을 만들 때는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심지어 벽돌을 구울 때도 온도를 섭씨 900도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이에 비해 흙은 지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석회와 모래를 넣어 소성벽돌이나 콘크리트 이상의 강도를 얻을 수 있으니 안전성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김순웅 교수가 흙을 ‘지속 가능한 재료’로 정의하는 이유다. “저는 ‘자연과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근현대 건축 재료들은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유해 물질을 내뿜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가 하면 실내 인테리어를 할 때 사용하는 합성수지나 본드는 사람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새집 증후군’이 대표적인 악영향이죠. 흙집은 이런 점들이 전혀 없을뿐더러, 사람이 떠난 뒤에 도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근현대 건축 재료보다 훨씬 낫죠. 말하자면 모두에게 좋은 재료가 바로 흙인 겁니다.” 김순웅 교수는 한국흙건축학교, 한국흙건축연구회 활동과 더불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목포대학교 도림캠퍼스를 품은 승달산의 산자락 약 5,000㎡를 매입해 흙건축마을과 흙건축전시관을 조성하고 있는 것. “앞으로 흙집이 보편화돼서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김순웅 교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흙을 향한 열정이 가득 들어찬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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