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이 나는 숲에서 밝은 웃음을 보이는 권오길 교수

흙내음이 나는 숲에서 밝은 웃음을 보이는 권오길 교수

테마 인터뷰 1

웃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

생물학자 권오길 교수

어려운 과학을 대중적인 글쓰기로 쉽게 풀어내는 1세대 지식인. 우리 시대의 과학 전도사이자 생물학 선생님인 권오길 교수는 흙에 대한 지식을 넘어 ‘흙에서 배우는 지혜’를 이야기했다. 흙을 통해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우 사진 이원재(Bomb Studio)

(왼쪽)권오길 교수가 소장한 달팽이 모형. 달팽이는 소처럼 느리다. 그래서 ‘와우(蝸牛)’라고 한다. 천천히 흙 위를 움직이는 달팽이는 조급하지도 않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왼쪽)권오길 교수가 소장한 달팽이 모형. 달팽이는 소처럼 느리다. 그래서 ‘와우(蝸牛)’라고 한다. 천천히 흙 위를 움직이는 달팽이는 조급하지도 않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오른쪽)글방 앞에 선 권오길 교수. 그는 ‘흙은 지구라는 생명체를 보드랍게 감싸고 있는 살갗’이라고 설명한다.

춘천에 글방을 둔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생물학자인 권오길 교수의 별칭은 ‘달팽이 박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달팽이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달팽이와 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흙에서 자란 풀과 이끼를 먹고 살고, 흙에서 평생을 지내죠. 달팽이가 사는 흙은 그만큼 깨끗하다는 뜻인데, 요즘에는 달팽이 만나기가 참 힘듭니다.” 비단 달팽이 같은 생물뿐일까. 흙 자체를 보기 힘든 도시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우리다. “지렁이가 나오면 ‘건밭’이라고 해요. 좋은 흙이라는 뜻입니다. 흙에 사는 생물들은 흙 위의 식물을, 흙 속의 유기물과 미생물을 먹고 살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양 미생물은 식물의 뿌리 끝에 붙어 양분을 잘 빨아들이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식물은 토양 미생물에게 포도당 같은 양분을 공급하죠. 흙과 동식물이 함께 사는 모습, 도우며 사는 모습을 배웁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흙이 거대한 ‘생태계’라는 것, 질서가 있는 ‘사회’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흙은 생물의 본성과 본능에도 맞닿아 있다.

"모든 생명은 흙에 살고, 흙은 모든 생명을 살립니다.
흙을 갈구하는 노력은 생물의 본능이자 인간의 본성인 셈입니다."

그동안 쓴 과학도서를 다 합하면 약 50여 권. 23년째 강원일보에 생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영원한 현역 과학자다.

그동안 쓴 과학도서를 다 합하면 약 50여 권. 23년째 강원일보에 생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영원한 현역 과학자다.

“흙냄새 기억합니까? 토향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향수 아닐까요. 흙냄새를 ‘지오스민(Geosmin)’이라고 하는데, 흙 속의 미생물과 세균들이 죽었을 때 나는 냄새입니다. 알고 보면 좀 으스스하죠?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그 흙냄새를 좋아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흙을 찾는다는 것은 순수함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자 생물의 본능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흙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마저 물었다. “요즘은 ‘터앝’이라는 우리말을 잘 안 쓰죠. 텃밭은 집 바깥 가까운 곳에 있는 밭이고, 터앝은 울안에 있는 작은 밭을 말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는 것도 터앝을 가꾸는 것이에요. 일상에 작은 화분을 들여 터앝을 만드는 일도 흙과 가까이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과 들에 나가서만이 흙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면, 내 일상 속 ‘흙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봄직하다. “사사로운 이야기 하나 더 해볼게요. 예전 어른들은 ‘낙지(落地)’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흙에 떨어졌다는 건 곧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죽음은 ‘입지(入地)’, 땅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할 수 있어요. ‘함소입지(含笑入地)’란 말을 새삼 되뇝니다. 웃음을 머금으며 땅으로 돌아가는 것, 땅과 함께 충실히 살다가 의연하게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이니까요.” 흙에서 자란 어린아이, 흙 위의 달팽이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노학자는 매일 텃밭과 글밭을 함께 일구며 생각을 가다듬는다. 웃으며 흙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그에게 흙이란 연구실이자 강의실이었고, 생활이자 철학이 되었다. 물론 우리에게도 흙이란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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