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스토리

흙과 함께
살며 사랑하며

지구는 곧 거대한 대지이며 흙이다. 그 커다란 흙에서 나고, 생활하고, 그 물성을 이용해 예술을 창조하고 인생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삶. 우리네 삶 가까이 자리한 다양한 흙의 모습을 살펴본다.
편집실 그림 김남희

사람과 유리컵 일러스트

circle of life
순환 ;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사슬

지구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 가운데 3분의 2가 땅 밑에 살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지구를 지배하는 작은 것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먹이사슬을 만들고 유기물을 분해하며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영양물을 저장하고 재순환시킨다. 그리고 흙을 비옥하게 하고 물을 정화하며 오염물질을 순환하고 독성을 없앤다. 이 모든 활동이 지표 아래 수십억 생명체가 먹이를 먹고 번식하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일어난다. 생명 순환이 이루어지는 한 줌의 흙. 이를 가까이 하고 싶어서일까. 요즘 테라리움을 가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테라리움은 라틴어의 terra(땅)와 arium(용기)의 합성어로, 유리 용기 속에 흙과 식물, 장식 소품을 넣어 식물을 가꾸는 것을 뜻한다. 1827년 영국의 한 의사가 식물이 밀폐 유리 용기 속에서 별도의 양분 공급 없이도 잘 자라는 것을 발견하며 시작되었다. 유리 용기 안에 흙과 식물만으로도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한편, 동화 <강아지 똥>에서 주인공인 강아지똥은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라 여기지만, 민들레 싹에 자신을 희생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간다. 오래 전 인간 또한 흙에서 생명이 기원했을 것이다. 인류의 문화를 돌아보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회귀본능을 느낄 수 있다.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의식주 일러스트

daily life
생활 ; 언제나 흙과 함께한 의식주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흙을 가까이해왔다. 이는 김장 문화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김장독에 신선하게 김치를 보관하는 원리는 땅속 온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땅속은 영상을 유지하는데, 따뜻한 지열을 김장독 주변으로 고루 순환시켜 김치를 얼지 않게 한다. 가을에 두텁게 쌓인 낙엽층과 미생물은 토양의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다. 김치를 담는 장독 또한, 흙으로 구워 만들어 공기층이 잘 순환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뚝배기나 밥공기, 다완 등도 흙으로 빚어내 활용하곤 했다. 한편, 의생활에서도 흙은 빠뜨릴 수 없다. 특히, 황토는 습도 조절작용과 항균작용이 뛰어나 세균의 번식을 막기 때문에 황토로 염색하여 옷이나 이불을 짓는데 애용하곤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관료부터 백성까지 ‘토홍색’, 붉은 황토색으로 옷을 즐겨 물들여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황토의 약효는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옛 문헌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흙으로 집을 지어 살기도 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시골의 토담이나 흙집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옛 생활상에는 항상 흙이 곁에 자리했다. 그리고 오늘날 전통과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이러한 의식주 문화와 흙의 효능이 재조명 받으며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흙으로 빚어낸 우리 곁의 작품들

artwork
예술 ; 흙으로 빚어낸 우리 곁의 작품들

흙은 하나의 훌륭한 예술자원이다. 물을 섞어 치대면 모양을 잡기 쉬워지고, 불에 구워내면 단단해지는 특성상 다양한 예술작품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실크로드가 자리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투루판 소공탑’이라 불리는 44m의 높다란 탑이 있다. 흙벽돌을 쌓고 흙을 발라서 만든 건축물로, 비가 좀처럼 오지 않는 이 지역의 기후 덕에 흙으로 만들었음에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테라코타 기법으로 만든 중국의 병마용은 다양한 얼굴 표정과 함께 실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형태로 높은 예술성을 평가받는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흙과 불의 마술’이라 불리는 고려청자가 있다. 고려청자의 빛깔은 비색(翡色)이라 하여 중국의 비색(秘色)과 구별하여 부를 정도였다. 특히 고려의 상감청자는 다른 나라의 상감 기법과는 다르게, 갓 빚어낸 청자에 무늬를 새기고 흰색 흙과 붉은색 흙을 그 무늬에 밀어 넣어 멋진 무늬를 창조해 냈다. 이 두 가지 흙은 가마에서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 마술처럼 색이 변하는데, 흙의 특징을 잘 파악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고려인의 지혜가 돋보인다. 더불어 흙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보이지 않는 예술작품으로도 표현되었는데 펄벅의 소설 <대지>가 대표적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값진 것이 땅’이라고 믿는다. 흙으로 예술을 창조해 낸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몸과 마음으로 건강하게 즐기는 흙

enjoyment
유희 ; 몸과 마음으로 건강하게 즐기는 흙

요즘 아이들은 옛날보다 청결한 환경에서 자라는데에도 면역력이 약해 병에 잘 걸리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주거 환경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잘 정돈된 콘크리트 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어릴 때 맨땅에서 뒹굴고 흙장난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 위생을 이유로 흙장난을 꺼려했던 것과는 달리, 흙을 통해 창의력, 상상력을 키우고 정서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흙을 통해 유희를 즐기는 것은 성인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난 ‘보령머드축제’를 살펴 보면 아이들보다 더 즐겁고 해맑게 진흙 속에서 뒹구는 어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1996년, 보령시가 대천해수욕장 인근 청정갯벌에서 채취한 진흙을 가공하여 머드팩 등 화장품으로 개발하며 시작한 머드축제는 이제 총 300만여 명, 그중 27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대규모 축제로 자리잡았다. 축제에 사용되는 머드는 불순물 제거 과정을 거쳐 생산된 머드분말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안정성검사를 통과하여 이스라엘산 사해 진흙보다 더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이제는 피부미용을 위해 널리 쓰이는 머드. 흙은 이렇듯 우리의 삶 곳곳에서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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