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스리랑카에서 만난
경이로운 생명
고래는 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바다로 삶의 터를 바꾸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를 매혹한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태어난 바다에서 시작해 3억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아가미를 없애고 물 밖으로 나와 네 발 달린 동물로 살다가 다시 5천만 년 전에 심해를 헤엄치는 바다 동물로 돌아간 존재라니. 이보다 더 극적이고 광대한 여행이 있을까.
글 사진 김남희(여행작가)
우주를 향해 날아간 고래의 노랫소리
이른 새벽의 바다는 뒤척임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새벽 바다에서 나는 고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수염고래 혹은 블루웨일이라 불리는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 였다. 바다와 육지를 더해도 그보다 더 큰 생명체는 없다고 했다.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신성의 존재를 기다리듯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짙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요하던 뱃전이 어느 순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선원이 외쳤다. “Over there! Blue whale!” 그의 손가락을 따라간 곳에 검은 형체가 떠 있었다. 배가 엔진을 끄는 순간 고래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물 위에 떠오른 등의 일부만으로도 몸체의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크기였다. 숨을 내쉬던 고래가 10여 미터 높이에 달하는 물기둥을 쏘아 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꼬리지느러미를 뒤집으며 솟구쳐 올랐다. 나는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 경이로운 모습을 지켜봤다. 백 년의 생을 다한 후에는 거대한 몸으로 바다 정원을 일구어 다른 생명체를 백년 간 먹여 살린다는 흰수염고래. 고래의 검은 등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보이저 호가 떠올랐다. 1979년,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지구를 떠난 우주선 보이저 호에는 청동 디스크와 축음기가 실렸다. 55개 언어의 인사말과 파도 소리, 참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고래의 노랫소리를 담은 디스크. 바다와 육지를 가로질러 우주를 향해 날아간 고래의 노랫소리는 지금쯤 어느 별 사이를 돌며 기다리고 있을까. 우주의 다른 생명체가 축음기 위에 바늘을 올리고 제 노래를 들어줄 그 순간을. 겨우 만 마리 남짓 남은 흰수염고래는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흰수염고래를 바라보던 그 아침은 날마다 찾아오는 여느 날과는 다른 아침이었다.
코끼리 가족이 자아내는 평화로운 풍경
고래를 보기 위해 항구 도시 미리사를 찾아오기 전날, 나는 우다왈라위 국립공원에서 아시아 코끼리를 만났다. 스리랑카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은 표범과 코끼리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 동물의 중요한 서식지로 남아있었다. 픽업트럭이 이정표도 없는 드넓은 열대의 초원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야생 버팔로들이 느릿느릿 걸어가고,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대기를 갈랐다. 마른 풀 냄새가 코끝을 찌르듯 밀려왔다. 가족 단위로 모인 코끼리들이 들판 곳곳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긴 코로 풀을 끌어당겨 묵묵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쉬지도 않고 계속 먹고 있었다.
마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경건한 몰입이었다. 하늘에는 아직 둥근 달이 떠있는 이른 아침. 몇 명의 인간들이 코끼리들의 아침 식사를 구경하고 있었다. 하루 3백 킬로그램의 풀과 열매, 나뭇가지를 먹는 코끼리답게 식사 시간도 길었다. 코끼리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먹이를 찾아다니고, 뜨거운 한낮에는 물에서 목욕을 하며 지내는 평화로운 동물이다.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일 없이 저 큰 덩치를 오직 풀과 나무, 과일에 의지해 유지하다니. 코끼리는 기억력이 뛰어나 수백 킬로미터 거리의 물가를 기억해 이동하고, 맛있는 과일 나무가 있는 곳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영상으로 죽은 동료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날 이후 영리하고 온순하고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코끼리가 새삼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우다왈라위를 떠나기 직전, 잊지 못할 장면과 마주쳤다.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난 코끼리 한 마리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다른 코끼리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중간쯤에서 멈춰 선 두 코 끼리가 동시에 코를 말아 올려 상대방의 코를 다정하게 감쌌다. 코끼리 두 마리는 마치 대화라도 하듯 한동안 코를 감은 채 서있었다. 그 날 하루를 살게 했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스리랑카에서 이것만은 꼭!
야생 동물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이 쌓아올린 경이로운 유적 또한 스리랑카의 자랑이다. 미리사 포구에서 흰수염고래를, 우다왈라위 국립공원에서 코끼리를 만나는 것 외에도 스리랑카에서 놓치지 말아야 경험이 많다. 최초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 아름다운 불탑과 사원이 늘어선 폴로나루와 유적이 있고, 오염되지 않은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바다를 품은 해안 도시 갈레, 눈이 닿는 아득히 먼 곳까지 차나무의 물결로 넘실거리는 힐컨트리도 빠뜨릴 수 없는 관광명소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이 스리랑카로 몰려들 날이 오기 전에 이 고요한 인도양의 보석을 찾아가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