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대부분은 기후위기 대응을 일상과는 거리가 먼 범지구적 논의와 연구, 환경운동가들의 유난스러운 노력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지구가 아프다는 징조가 전 세계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그 피해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플로깅(Plogging)과 같은 생활 속 친환경 활동,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챌린지, 채식 위주의 식단 구성, 친환경 제품 구매 등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균 온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인류가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상한선인 1.5℃ 상승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마을 단위에서부터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탄소중립 지향 매장으로, 2021년 5월 수자원보호구역인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 마을 한편에 자리를 틀었다. 매장명에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를 붙인 국내 최초의 공판장이다.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은 민관이 힘을 합친 끝에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넷제로공판장 개점을 주도한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해유협동조합)은 2020년 7월 창립 직후 탄소중립 매장과 에너지 전환 마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재생에너지 주민 지원사업이 진행 중이던 미호동은 주민들의 호응도 좋고 금강과 대청호로 둘러 쌓인 육지의 섬 같은 곳이라 주목을 끌었다. 수자원보호구역으로 개발에 여러 제약이 있어 탄소중립 마을을 실현하기 좋은 환경인 데다가, 주민들이 대청파출소가 떠나고 난 자리에 마련한 농산물 공판장은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해유협동조합의 로드맵을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 해유협동조합 에너지전환팀의 조아라 활동가가 이후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마을 주민들의 협의체인 미호동복지위원회와의 논의를 통해 주민 공판장 자리에 새로운 탄소중립 매장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지역의 환경단체인 대전충남녹색연합과 신재생에너지 설비 전문기업 신성이앤에스㈜도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을 위해 힘을 모아 주셨죠.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은 이렇듯 5개 민관 기관이 다각도로 힘을 합친 끝에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은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판매한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고체 샴푸·세제·치약은 기본, 생분해되는 천연고무장갑, 대나무 화장지, 대나무 칫솔, 코코넛 섬유 목욕솔, 마 수세미,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통주 등이 대표적인 판매품이다. 이와 함께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른 유기농 농산물도 판매한다. 지역에서 나고 소비되는 로컬푸드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온실가스와 유해물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친환경적이며, 산지와 가깝기에 신선하기까지 하다. 덕분에 매년 수천 명이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을 찾는다.
“우리 매장에 오시는 분들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셔야 합니다. 일회용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지 않기에 빈 용기와 장바구니를 준비하셔야 하고, 포장지가 필요 없는 제품은 끈으로 묶어서 판매하기에 물건을 옮기는 데 좀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넷제로공판장에 오시는 만큼, 이왕이면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오시는 것을 추천하는데요. 이곳에 오실 때만이라도 ‘우리가 조금 더 몸을 쓰면 지구가 조금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되새기셨으면 좋겠어요.”
미호동 넷제로공판장 2층에는 넷제로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환경 관련 도서와 전시·기획전을 접할 수 있으며, 해유협동조합이 마련한 탄소중립 및 제로 웨이스트와 관련된 교육과 견학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넷제로 혹은 제로 웨이스트 매장을 열고 싶은 분들에게 개점 및 운영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친환경 매장을 연 사장님도 여럿 존재한다. 연간 1천여 명이 교육과 견학, 컨설팅에 참여하며,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알게 모르게 주변에 친환경 활동의 가치를 퍼트리는 탄소중립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법을 알려 줄 때와, 친구나 지인이 ‘나는 넷제로공판장에서 물건을 사고, 이런저런 친환경 활동을 하고 있다’며 동참을 권유할 때의 느낌은 전혀 달라요. 후자가 더 높은 확률로 실질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죠.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이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다채로운 친환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는 미호동 넷제로공판장 활동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처음에는 친환경 제품만 판매하고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만도 더러 있었지만,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이 이른바 ‘풀뿌리 탄소중립의 성지’로 주목 받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친환경 행보에 동참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미호동 넷제로공판장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언론 인터뷰도 자처한다.
“우리는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넷제로공판장 운영을 넘어 마을 전체가 에너지 자립 마을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각도로 모색해 왔습니다. 그러자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했는데요. 이를 위해 친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자 극단을 운영하고 주민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넷제로 장터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미호동 식당 두 곳은 채식 메뉴를 마련해 넷제로공판장의 교육 및 견학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셨죠. 이제 미호동 주민들을 빼놓고는 우리의 활동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사용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RE100’은 기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호동 마을도 넷제로공판장과 함께 ‘RE100 마을’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미호동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기술평가연구원이 주관하는 ‘마이크로그리드 연계운영 실증 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총 4년에 걸쳐 미호동 일원의 에너지 자립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추진 중인 이 사업을 통해 미호동 주민들은 발 빠르게 각 가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도입했다. 덕분에 2023년 5월 현재 ‘RE50+(신재생에너지 충당률 50% 이상)’를 조기 달성했으며, 앞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에너지 자립율을 높여 조만간 RE100을 완성할 계획이다.
“우리와 주민들의 활동을 통해 미호동 마을이 넷제로 마을의 선진 사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미호동 마을을 필두로 더 많은 마을과 도시가 넷제로를 향해 한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거나 그간 미호동 넷제로공판장과 주민들이 쌓아 온 탄소중립 경험이나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언제든 이곳을 찾아 주세요.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과 정보를 내어 드릴 각오가 돼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