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상징과도 같은 광화문은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이 복원했고, 한일강제병합 이후 동쪽으로 강제 이전됐다가, 2008년 재건되며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험난한 시간 속에서도 광화문 앞길이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관공서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다시 문을 연 광화문광장은 이곳의 의미와 기능에 맞는 옷을 갖춰 입은 듯하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1392년 조선 건국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30년의 역사의 흐름을 상징하는 작은 물길이 흐른다. 사헌부가 있던 문터는 광장을 조성하면서 발굴됐다. 우리나라 자생 수종으로 꾸민 사계정원은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광장 지하는 광화문광장의 탄생부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담긴 박물관으로 꾸몄다. 해거름 무렵 광장 곳곳에 조명이 들어오면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퇴근한 직장인들은 여유롭게 야경을 즐긴다. 오랫동안 역사의 중심이었던 광화문광장은 지금도 시민들의 삶 중심에 있다.
구서울역사는 서울 상경의 첫 관문이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무대였다. 1922년 건립 당시 돔과 붉은 벽돌, 화강암 바닥과 인조석을 붙인 벽 등 이국적인 르네상스식 건물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2층에 있던 최초의 양식당 ‘그릴’은 양식당의 대명사로 통할만큼 화젯거리였다. 구서울역사는 2004년 폐쇄된 후, 2009년부터 2년간 원형복원 공사를 거쳐 2011년에 옛 서울역의 사적 번호인 284를 따서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거듭났다. 서울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공간에는 각종 소장품이 전시돼 있으며,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내·외부 투어에 참여하면 교통, 건축, 생활상 등을 테마로 한 재미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 앞에는 공중보행교인 ‘서울로 7017’이 있다. 70년대 준공된 서울고가가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될 상황에 놓이자 2017년 녹지와 결합한 ‘사람길’로 재탄생시킨 곳으로, 도심 산책길이자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용산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선박을 이용한 교역의 중심지이자 군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주요 병참기지로 일본과 청나라 등 외국 군인이 주둔했고, 1945년부터 최근까지 주한미군이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 속의 작은 미국’으로 반세기 넘게 금단의 구역으로 존재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고, 언론의 자유가 허용됐다. 그리고 2018년부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추진되면서 용산 미군기지 일부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미군 장교 숙소 5단지이다. 용산공원 주변의 높은 철책 담장을 따라 정문으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 가옥과 너른 잔디 마당이 펼쳐진다. 여유로운 풍경 속에서 철책 담장만이 한때 이곳이 금단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내부는 붉은 벽돌로 지은 장교 숙소와 오픈하우스, 카페, 전시 공간 등으로 꾸며져 있다. 그 가운데 이곳에서 생활했던 미군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인 오픈하우스가 볼만하다. 구석구석 감각적인 포토존이 많아 SNS 핫플로도 인기다.
한강을 건너 압구정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랜드에 민감한 MZ세대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도산’이 있다. 노출콘크리트 건물 속에는 미술관인지 쇼룸인지 모를 과감한 공간이 펼쳐진다. 2층부터 3층까지는 아이웨어 ‘젠틀몬스터’의 쇼룸으로, 글로벌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6족 보행 로봇 ‘프로브’가 미친 존재감을 뿜어낸다. 높이 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하우스 도산이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4층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화이트 빛 실내에 온화한 원목 느낌으로 인테리어된 탬버린즈 매장에는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갈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로봇 설치작품 키네틱 오브제가 기다린다. 그리고 디저트 카페 ‘누데이크’에는 감각적인 오브제 같은 케이크 모형이 ‘힙’하게 진열돼 있다. 시그니처 케이크인 ‘피크’는 초록색 용암을 둘러싼 검은 활화산을 닮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비주얼과 뛰어난 식감 그리고 맛은 MZ세대가 좋아할 요소를 고루 갖췄다.
① 옛 경성전기 사옥, 한전 서울본부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② 우리나라 최초로 전깃불이 켜진 곳, 경복궁 건청궁 종로구 사직로 161
③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소, 당인리발전소(마포새빛문화숲) 서울 마포구 당인동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