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는 약대동 ‘세대공감 어울림’ 합창단원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는 약대동 ‘세대공감 어울림’ 합창단원들

스페셜 인터뷰 2

화음으로 세대차이를 뛰어넘어요

부천 약대동 마을합창단 ‘세대공감 어울림’

매주 토요일 약대동 ‘달나라 토끼’에서는 10대부터 60대까지 열다섯 내외의 주민들이 모여 노래를 부른다. 나이도, 성별도 각기 다른 이들은 노래라는 공감대 하나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세어림은 ‘세대공감’을 위해 거창한 구호나 진중한 다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목소리의 화합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윤희 사진 이원재(Bomb Studio)

65세의 나이로 최고령 단원인 김형자 씨

65세의 나이로 최고령 단원인 김형자 씨

노래로 하나 되는 약대동 마을 주민들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아기염소’를 불러볼까요? 우선 의자에 걸터앉아 발성부터 시작해요.” 단장이자 지휘자인 선이정 씨의 반주가 시작되자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던 마을 합창단 단원들이 일제히 자세를 고쳐 앉고 발성을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약대동 마을카페 달토가 세어림의 연습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기염소에서는 3번의 변화가 있어요. 어디일까요?” 반주를 하던 선이정 씨가 질문을 하자 어디선가 툭 대답이 들려온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곳이요!” 노래 연습을 하는 시간 내내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의 소통이 이어졌다. “그렇죠. 빗방울이 떨어지니까 슬프죠? 그래서 단조로 바뀌어요. 그 부분은 목소리를 조금 작게, 다시 한 번 불러볼게요. 어디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에요. 투쟁하듯이 강하게 하시면 안 되어요!” 지휘자의 재미난 지적이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약대동 마을합창단 세어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두 시간 남짓 노래 연습을 한다. 15명 내외의 단원들은 모두 약대동 주민들로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연령대가 모여서 화음을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3년째에 접어드는 세어림 단원들은 익숙한 듯 서로의 목소리에 맞춰 멋진 화음을 만들어 냈다.
세대공감 어울림은 2016년 부천시민 통일음악회 참가 계획을 세우면서 급하게 결성되었다. 당시에는 이름도 없어서 ‘꾀꼬리합창단’으로 참가신청을 하였다. “음악회 한 달 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급하게 합창단을 결성했어요. 처음부터 세대공감을 생각하고 만든 모임이에요. 약대동 한글교실 어른들부터 꿈터 아이들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모임을 생각했어요.” 합창단 창단 때부터 지휘자로 참여했던 선이정 단장은 노래 모임으로 시작한 만남이 삼 년째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간의 시간을 놀라워했다.
“한달간 열심히 준비했는데, 음악제에서 덜컥 2등 상을 수상한 거에요. 그러니 다들 계속 하자고 불타올랐죠. 그래서 정식으로 출범 총회를 하고 단원들에게 이름도 공모했어요. 결국 ‘세대공감 어울림’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아 세어림합창단이 되었어요.” 세어림합창단은 결성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여기저기서 공연 초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새로운 맴버들도 많이 들어왔다. “매주 모여서 연습을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어려워도 끈을 이어 나가자는 마음으로 다들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세어림 단원들은 한 사람의 노력을 칭찬하기 보다는 함께 해온 시간을 뜻깊게 여기며 시간 시간을 추억했다.
“보통 합창단은 가곡을 주로 연습하잖아요? 우리는 장르가 없어요. 가곡, 가요, 동요, 국악, 민요까지 모든 장르를 연습해요. 그게 우리 합창단의 매력인 것 같아요.” 세어림은 행사 초청이 들어오면 기존의 곡을 연습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 특성에 맞춰 곡 선정부터 시작한다. 때문에 어느 곳에서, 어떤 내용의 요청인지에 따라 선곡이 바뀐다. “전남 고흥에서 마을 효 잔치에 초대를 받아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함양 양잠가’를 준비해서 갔어요. 민요에 화음을 넣으려니까 쉽지 않아 연습 때는 힘들었는데, 막상 공연 날 주민들이 너무 좋아해서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니까 그렇게 좋더라고요.” 행사 요청이 있으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는 단원들은 작년에 참여했던 ‘작은 교회 박람회’를 기억에 남는 행사로 꼽았다. “작년에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진행된 작은 교회 박람회에 초대 공연을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세월호 어머니 합창단 분들을 만나 함께 공연에 참여했었는데 그 때 기억이 많이 나요.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이에 상관없이, 노래 자체를 즐기는 마음으로 함께 해요. "

(왼쪽) 진지하게 합창연습에 몰입하고 있는 ‘세어림’ 단원들 (오른쪽) 반주자이자 합창단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선이정 씨

(왼쪽) 진지하게 합창연습에 몰입하고 있는 ‘세어림’ 단원들 (오른쪽) 반주자이자 합창단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선이정 씨

가곡부터 민요까지 연습하는 세어림, 세대차이? 세대공감!
“새해에는 조금 더 장르의 폭을 넓혀보려고요. 연령이 다양한 만큼 어린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시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세어림의 가장 어린 단원은 중학교 1학년 이수경 양으로, 최고령 김형자 씨와는 5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 때문에 곡 선정부터 세대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없는데, 아이돌 노래도 연습 해보고 싶긴 해요.” 아이돌 노래라는 이수경 양의 말에 단원들은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할 수 있어! 우리가 열심히 연습해 볼게.” 어머니뻘의 단원들은 학생들을 돌아보며 미소로 화답했다. 세대공감 어울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은 의견도 존중하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은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시간이 기다려져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요? 덩달아 저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65세로 세어림 최고령자인 김형자 단원은 모두를 품어줄 것 같은 푸근한 미소로 단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합창이라는 게 서로 다른 목소리가 화합하여 하나의 화음을 내는 거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이에 상관없이, 노래 자체를 즐기는 마음으로 함께 해요. 차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함께 하며 그 차이는 좁혀나가는 것 같아요.”
세어림 단원들은 하나같이 단원들 사이에 세대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슬며시 서로를 돌아보며 “나는 전혀 못 느꼈는데, 혹시 평소에 세대 차이 느꼈어?”라고 자신들이 놓친 부분이 있을까 세밀히 챙기는 모습에서 이들의 끈끈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세대가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짜 공감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때문에 거대한 대가족이 모여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세어림합창단 안에는 부부, 모자, 자매 등 진짜 가족이 함께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단원들은 세어림이 가족의 화합에도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사람들을 알아가는 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쉴 새 없이 서로의 대답에 반응하고, 추임새를 넣는 모습에서 평소 얼마나 친근하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이면 행사 초청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냐는 질문에, 노래를 잘한다기 보다는 세대공감이라는 뜻이 좋아서 초청이 들어온다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단원들. 하지만 합창단 결성 이후 한 달에 한번 꼴로 공연을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이들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게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하니 ‘세대공감 어울림’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듯 해보였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다 풀어내는 것 같아요. 같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져요. 억눌렸던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랄까요?” 평소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을 이어나간다는 세어림 합창단. 결성 이후 초청공연을 소화하기도 버거울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기공연에 대한 계획도 세우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합창단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는 약대동 주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노래를 잘 불러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새로운 얼굴들과 또다른 공감을 이어나갈 세어림의 화합이 더 큰 기대를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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