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의료통역 요원으로 06 뽑힌 펑샤 씨(왼쪽)와 김애화 씨(오른쪽)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의료통역 요원으로 뽑힌 펑샤 씨(왼쪽)와 김애화 씨(오른쪽)

스페셜 인터뷰 1

그동안 받았던 마음을 되돌려주고 싶어요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의료통역 요원 김애화, 펑샤 씨

세계인의 축제의 장인 평창에 선수들만큼이나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 선수와 관중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경기가 끝나기를 바라며 경기장 안팎을 지키고 있는 의료통역 요원들. 그 중 결혼이주여성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중국인 김애화 씨와 펑샤 씨를 만났다. 소통과 공감으로 성공적인 한국생활을 이룬 이들은 의료 통역 봉사에서도 자신들의 공감능력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란 자신감을 내비친다.
정윤희 사진 이원재(Bomb Studio)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만난 펑샤 씨(좌)와 김애화 씨(우)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줄 기회라 생각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세계적인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서 영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해요. 대회기간 동안 저희의 활약이 필요한 경우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일 환자가 생기면 그동안 배우고 익힌 통역 실력과 의료지식을 활용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막바지 준비로 바쁜 시기에 김애화 씨와 펑샤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애화 씨는 동계올림픽 기간에, 펑샤 씨는 패럴림픽 기간에 각각 메디컬 서비스 매니저와 부매니저로 활약하게 되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태어난 김애화 씨는 인천시 부평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하다 2004년 한국으로 유학을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국에 있을 때 한국 대학팀의 백내장 수술 장면을 보고 나도 저런 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간호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던 김애화 씨는 올림픽 의료통역 요원을 모집한다는 말에 자신의 전문분야라 더욱 반가웠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의료통역 봉사를 한 경험이 있는 김애화 씨는 누구보다 평소에도 의료 통역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 다닐 때 외국인 노동자센터에서 통역봉사를 처음 시작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치료비가 걱정되어서 특정 부분만 아프다고 말하거나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해결이 안 되어요. 때문에 의료통역은 다른 영역보다도 전문가가 해야 해요.” 김애화 씨는 누구보다도 의료통역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조금도 소홀히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한달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일정마저도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 고 말하였다.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푸젠(福建)성 융안(永安) 출신의 펑샤 씨는 학교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과 가까이 어울리며 한국에 호감을 느껴 2004년 어학과정으로 한국에 건너왔다. 1년간 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던 펑샤 씨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3년 만에 다시 들어와 현재 서울시 중림구에서 살고 있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국 생활이 전혀 낯설지 않고 즐거웠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기억만 가득했던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서 한국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펑샤 씨는 한국에 다시 오게 된 이유를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 같은 그리움이 있었다. 짧은 시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생활이나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펑샤 씨는 한국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창 올림픽 의료통역 요원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2017년에 ‘외국인 코디네이터’ 교육을 받은 덕분이었다. “2017년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진행한 ‘외국인 코디네이터’ 과정에 지원하여 수료하였어요. 처음에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차츰 흥미가 생겨 마지막에는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평창패럴림픽 의료통역까지 이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펑샤 씨는 인터뷰 내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부끄러워했지만, 그녀 역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료통역 요원으로 선발된 실력자이다. 조직위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 34명 중에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하다.

"후배들을 만나면 제가 걸어온 길을 부러워하며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럼 굉장히 기분이 좋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의료요원들에게 나눠준 올림픽 물품

의료요원들에게 나눠준 올림픽 물품

공감을 넘어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김애화 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식사 때가 가장 외롭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힘을 준 사람이 대학원 은사님이다. “지도교수님이 미국 유학 경험이 있으셔서, 제가 겪는 불편이 눈에 보였던 것 같아요. ‘너도 이겨내야 해’라고 응원해주었어요. 식사할 때가 되면 밥 먹을 사람이 없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사실 교수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부러 전화를 하신 거에요.” 그때 함께 나눈 공감은 결국 지금까지 한국에 머무르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펑샤 씨 또한 교회 지인들의 도움이 한국 생활의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었어요.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웠던 시간도 많았고요. 건강체질이라 병원을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이 아프면 걱정부터 되었어요. 외국인은 의료보험에 가입이 안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병원가는 게 무서웠어요. 그때 교회에서 알게 된 의사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외국인이 타지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도움을 준 친구들은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펑샤 씨의 든든한 지원자들이다.
두 사람 모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금 더 많은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다짐을 내비쳤다. “의료 통역 요원 지원은 두 가지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남편이 말했듯이 그동안 제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기회인 것이 첫 번째이고, 개인적으로는 평창의 경험을 키워서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북경동계올림픽에서도 교육하고, 활용하고 싶은 개인적인 꿈이 있어요.” 김애화 씨는 체계적인 의료통역 시스템 구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펑샤 씨 또한 한껏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한 달 간 합숙 생활이 무척 즐거울 것 같아요. 그곳에서 현장 요원들에게 배울 것들도 참 많고요. 올림픽이 끝나도 계속 의료통역 쪽의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올림픽의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펑샤 씨(좌)와 김애화 씨(우)

펑샤 씨(좌)와 김애화 씨(우)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두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요즘 특히나 다문화가정의 후배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그만큼 제가 안정되었다는 뜻이겠죠? 후배들을 만나면 제가 걸어온 길을 부러워하며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럼 굉장히 기분이 좋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애화 씨는 의료 코디네이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펑샤 씨와도 처음에는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의 ‘외국인 코디네이터’ 강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옆에서 많이 배우며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중국인 친구들이 질문을 하면 자세하게 설명해주려고 해요.” 한국 생활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동화된 펑샤 씨는 자신이 받은 좋은 인상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중이다. 앞으로 이들이 의료 통역 분야에서 선보일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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