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역사를 입다
우리만의 독특한 음식문화 쌈밥
한식 중에서 제일 독특한 음식은 쌈밥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싱싱한 채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으로 싸먹는다. 밥도 채소에 담아 쌈으로 먹고 삼겹살도 꽃등심도 생선회도 어떤 음식이든 쌈으로 먹는다.
글 윤덕노(음식평론가) 일러스트 박수정
영양 많은 제철 쌈, 진정한 산해진미
우리가 얼마나 쌈을 좋아하는지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우리 민족은 채소 중에서 잎사귀가 조금만 크다 싶으면 모조리 쌈을 싸 먹는다면서 쌈을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으로 꼽았다. 값비싼 소고기나 생선회의 맛과 식감을 제대로 즐기려면 재료 그대로 먹는 것이 훨씬 더 좋을 텐데 우리는 그래도 쌈으로 싸먹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싸먹는 쌈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흔하기는 상추쌈이 일반적이지만 여름이면 찐 호박잎을 비롯해 배춧잎 깻잎 곰취와 같은 산나물에 미나리 쑥갓과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는다.
비단 채소뿐만이 아니다.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도 쌈에서 빠지지 않는데 김은 당연하니 말할 것도 없고 미역과 다시마도 쌈의 재료다. 누가 조사했는지 한국인이 먹는 쌈밥의 종류가 100가지를 넘는다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이렇다 보니 한민족은 채소에다 밥 싸 먹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옛날부터 외국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원나라 때 몽골에 끌려간 고려인들이 현지에서 고향을 그리며 텃밭에 상추를 심고 그 잎으로 쌈을 싸먹으며 향수를 달랬다는데 덕분에 한때 원나라 수도에서는 상추쌈이 유행했을 정도다. 이 모습을 본 원나라 시인 양윤부가 난경잡영(欒京雜詠)라는 시에서 고려의 맛좋은 상추를 노래했다.
"쌈이야말로 채소 중에서는 진정한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쌈을 싸 먹는 채소는 대부분 제철 채소다. 제철 음식이 좋다는 것이야 모두가 알고 있지만 특히 봄과 겨울에는 채소의 영양분이 뿌리와 새싹으로 모이는 반면 여름에는 모두 잎 넓은 채소에 모인다고 한다. "
생각해 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 쌈밥을 좋아하게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쌈이야말로 채소 중에서는 진정한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쌈을 싸 먹는 채소는 대부분 제철 채소다. 제철 음식이 좋다는 것이야 모두가 알고 있지만 특히 봄과 겨울에는 채소의 영양분이 뿌리와 새싹으로 모이는 반면 여름에는 모두 잎 넓은 채소에 모인다고 한다. 때문에 옛말에 겨울을 지낸 봄나물의 새싹과 뿌리는 인삼보다 좋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잎사귀 넓은 채소가 봄나물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이 상추로 지금은 상추가 워낙 흔해 그 진가를 몰라서 그렇지 고대에는 상추를 보약처럼 여겼다.
상추는 별명이 천금채(千金菜)다. 원산지가 이집트인만큼 종자가 귀해 천금을 주고 구하는 채소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 모두 상추를 양기가 넘치는 채소로 여겼다. 고대 이집트에서 상추는 생명의 신인 민(Mihn)에게 바치는 제물이었고 우리한테도 그런 믿음의 흔적이 있다. 예전 시골에서 아낙네가 텃밭에 상추를 많이 심으면 수군수군 뒷담화를 했다. 상추가 정력에 좋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조선 최고의 석학 정약용도 쌈밥을 좋아해 두 아들에게 쌈밥의 교훈까지 남겼는데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참고할 만하다. 살면서 제일 나쁜 짓은 남을 속이는 일이나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속여도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으니 입맛만큼은 속여도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순간적일뿐인데 맛있는 음식 먹겠다고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맛있게 먹으면 된다면서 쌈밥을 예로 들었다. 꽁보리밥도 상추에 싸서 달게 먹으면 입이 즐거운 것이니 입을 속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인데 뒤집어 보면 쌈밥이 그만큼 맛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