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내일

지역 화폐로 만드는 행복한 마을

한밭레츠

직접 만지거나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웃사촌끼리의 정이 있기에 서로를 믿고 물품이나 재능을 거래한다. 지역 화폐 ‘두루’로 공동체 중심의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한밭레츠와 회원들의 이야기다.
강진우(자유기고가) 사진 한밭레츠 제공

(왼쪽 위)두루를 사용할 수 있는 장터 (오른쪽 위)정을 쌓기 위해 한밭레츠는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든다(오른쪽 가운데)퀄트 품앗이의 재료들 (왼쪽 아래)카페에서 만찬을 즐기는 회원들 (오른쪽 아래)퀄트 품앗이에 참여한 회원들

우리 조상들이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서로 품을 빌리고 갚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웃과 나누는 정일 겁니다. 저희 또한 두루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재건하고 그 안에서 서로 정을 나누며 살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왼쪽 위)두루를 사용할 수 있는 장터 (오른쪽 위) 정을 쌓기 위해 한밭레츠는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든다
(오른쪽 가운데)퀄트 품앗이의 재료들 (왼쪽 아래)카페에서 만찬을 즐기는 회원들 (오른쪽 아래) 퀄트 품앗이에 참여한 회원들

현금 대신 ‘두루’로 거래하는 사람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품을 빌리고 갚으며 돈독한 정을 쌓아 가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품앗이.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전통을 지역 화폐로 부활시킨 이들이 있다. 대전 대덕구에 터를 잡고 있는 한밭레츠다. 1999년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해 다음해 2월 창립총회를 가진 뒤, 지역 화폐 ‘두루’를 매개로 필요 없는 물품이나 쓸모 있는 재능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작년 12월 현재 661가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2017년 한 해 동안 2억 4천만원 가량의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많이 활성화된 지역 화폐 공동체다.
한밭레츠의 두루는 ‘서로 두루두루 나누고 돕자’는 뜻을 품은 지역 화폐 단위로, ‘1두루=1원’이다. 실제 지폐나 동전은 사용되지 않는다. 한밭레츠 회원 가입 후 거래하고 싶은 물품이나 재능을 ‘거래하고 싶어요’ 게시판에 올려 필요한 사람을 찾아 거래하거나, 회원끼리 서로 연락해 두루로 거래한 뒤 ‘거래했어요’ 게시판에 거래 내역을 올린다. 한밭레츠 거래 등록소에서는 이를 확인한 뒤, 거래 목록에 맞는 두루를 이쪽 회원에서 저쪽 회원으로 넘긴다. 거래 회원 간의 협의에 따라 전액 두루로 계산하거나 현금과 두루를 함께 사용해 거래할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 두루를 전체 금액의 30% 이상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두루의 활용성을 높이는 한편 판매 회원의 현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한편 카센터, 카페,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 한밭레츠와 뜻을 함께 하는 대전 지역 상점 혹은 단체 30개소에서도 두루 사용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회원업소의 마진율을 생각해 두루 사용 하한선을 20%까지 내린 것이 특징이다. 물론 한밭레츠에서 만든 두루 외에도 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 화폐가 있다. 성남시에서 발행하는 성남누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인하지 않았으면서도 이만큼 긴 기간 동안 성장하고 이어져 온 지역 화폐 공동체는 한밭레츠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밭레츠 회원들은 도대체 뭘 믿고 두루로 상품과 재능을 거래하는 것일까. 거래 등록소를 지키고 있는 김찬옥 두루지기에게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바로 ‘회원들 간의 믿음’이다.

두루의 공신력, ‘이웃 간의 정과 믿음’
한밭레츠에 가입하려면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거래 등록소에 직접 찾아와서 가입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후 지역 화폐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과 한밭레츠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배운 뒤에야 비로소 홈페이지 가입과 두루 사용이 가능하다. 현금 거래와 두루 거래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금은 공인기관이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상점뿐 아니라 온라인 상점에서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두루는 사정이 다르다. 이웃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거래 시에는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만나야 한다.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된 회원들 간의 거래는 등록소에서 물건을 맡아주는 등 약간의 편의를 봐주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거래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거래 조건을 점검하고, 물품을 전달한 뒤 홈페이지에 거래 내역을 올린다.
“한밭레츠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지역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모든 거래는 이웃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죠. 사실 거래라기보다 품앗이 혹은 나눔이라는 개념이 더 커요. 최소한의 비용을 현금과 두루를 혼용해 받고, 나에게 필요 없는 물품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은 재능을 기부하는 거죠.”
믿음과 정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직접 살을 부비고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경험을 해야 비로소 조금씩 쌓인다. 따라서 한밭레츠에서는 회원들끼리 모일 수 있는 행사를 여럿 마련하고 있다. 각자 집에서 반찬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밥을 나눠 먹는 ‘만찬’이 수시로 이뤄진다. 두루를 사용할 수 있는 장터를 여는가 하면, 회원들의 재능과 강의를 밑천 삼은 동아리 모임의 장소도 제공한다. 거래 등록소를 아예 카페처럼 꾸며놓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차 한 잔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쌓인 정과 믿음이 두루의 공신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화페 ‘두루’를 소개하는 회원들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화페 ‘두루’를 소개하는 회원들

온 마을을 두루로 아름답게 해요!
한밭레츠는 태초부터 지역 공동체에 존립을 기대어 왔다. 따라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제1순위 목표로 두고 있는 지자체 발행 지역 화폐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두루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게 한밭레츠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래서인지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사정상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회원들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거래 등록소를 찾아온다는 게 김찬옥 두루지기의 설명이다.
“우리 조상들이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서로 품을 빌리고 갚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웃과 나누는 정일 겁니다. 저희 또한 두루 활용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두루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재건하고 그 안에서 서로 정을 나누며 살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만남과 나눔, 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 만나든 서로 어색함이 없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죠. 이것이 지금껏 한밭레츠를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원동력입니다.”
한밭레츠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역 공동체를 되돌려주기 위해 지난 2012년, 대전 원도심 지역에 원도심레츠도 만들었다. 한밭레츠의 주 회원이 40~50대 주부라면, 원도심레츠는 20~30대 젊은층이 주축이다. 서로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두루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단체의 본질과 추구하는 방향만큼은 같다. 한밭레츠와 원도심레츠 모두 이웃사촌들과 힘을 합쳐, 더 따뜻하고 행복한 마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밭레츠의 올해 슬로건은 ‘온 마을을 두루로 아름답게 해요’다. 대전에 두루를 한층 더 안착시켜 정으로 하나 된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이를 위해 SNS와 밴드를 중심으로 한 접근 채널 다각화에 힘을 쏟으려 한다는 한밭레츠. 품앗이의 전통을 이어 나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역 품앗이’와 화폐 ‘두루’
한밭레츠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노동과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노동과 물품을 제공받을 수 있는 ‘다자간 품앗이’ 제도로 운영된다. 이때 지역 내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두루’를 통해 교환이 이루어진다. 서로간의 신뢰와 지역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품앗이를 통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에 개인의 자긍심도 높일 수 있다.

한밭레츠 품앗이 거래방법
과거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거들어주며 품을 지고 갚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품앗이가 최근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한밭레츠에서는 물품 뿐 아니라 각종 기술, 에너지, 아이디어 등을 교환하며 지역품앗이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이웃에게 제공할 자신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는 일 또한 품앗이의 순기능이다.

새싹 일러스트

STEP 1 [스스로] 마음 열기
이웃과 나눔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준비는 바로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면 한밭레츠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메모지 일러스트

STEP 2 [스스로] 소개하기
한밭레츠에 가입서를 작성하고, 하는 일과 거래하고 싶은 목록, 연락처를 적어 등록소에 등록합니다.
거래하고 싶은 품목이나 연락처가 바뀌면 등록소에 알립니다.
가입서 작성은 방문이나 전화, 홈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웹사이트 일러스트

STEP 3 [스스로] 거래 신청하기
전화나 방문, 홈페이지 ‘거래했어요’ 게시판을 통해 거래일자, 거래자, 거래내역, 거래액수 등을 알립니다.
두루를 받는 사람이 등록소에 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서로 상의하여 알립니다.
병원거래, 등록소를 통한 농산물 공동구매는 등록소에서 일괄적으로 등록합니다.

마이페이지 일러스트

STEP 4 [등록소] 계정 관리
등록소에서는 보고된 거래를 정리하여 각 개인이 자기 계정현황을 알 수 있도록 합니다.
회원가입을 한 회원은 개인별 계정을 부여받고, 회원간의 거래내역은 등록소에서 계정에 기록합니다.
홈페이지 ‘두루통장’을 통해 본인의 두루 잔액과 최근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품과 서비스의 가격
거래되는 물품과 노동의 가격은 회원 상호간의 합의하에 결정됩니다. 회원들은 거래액의 일부를 시중화폐(원)로 지불할 수 있으나, 이 경우 두루가 전체 거래액의 30%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홈페이지 www.tjlets.or.kr 문의 042-638-2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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