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살에 중학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대학 입학이라는 꿈에 다가선 이명순 씨

여든살에 중학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대학 입학이라는 꿈에 다가선 이명순 씨

스페셜 인터뷰 2

젊은이들과 함께 할 대학생활이
기대됩니다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최고령 응시생 이명순 씨

매년 11월이면 대학입시를 앞둔 전국의 수험생들을 긴장하게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첫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2018년에는 총 59만 3,527명이 응시하였는데, 이명순 씨는 최고령 응시생으로 시험장을 찾았다. 팔순을 넘긴 나이로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선 이명순 씨를 만나 본다.
정윤희 사진 이원재 (Bomb Studio)

이명순 씨는 뒤늦게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명순 씨는 뒤늦게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활짝 웃고 있다.

배움에 대한 갈망과 뒤늦은 시작
‘수능한파’라는 말이 있을 만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겨울 최대 이슈 중 하나이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면 뉴스마다 ‘수능풍경’이 보도가 되고, 최고령·최연소 응시생 및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수험생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긴장과 떨림 속에 준비를 하는 수능, 2018년 시험에도 85세의 나이로 도전한 이명순 씨가 화제가 되었다. “시험을 접수할 때만 해도 나이가 가장 많을 것이란 생각은 안해 봤어요. 많은 사람이 도전하는 시험이기에, 나도 그 중 한명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험을 치르기 직전에 선생님이 말해주더라고요. 그때는 그런가보다, 덤덤하게 생각했어요.” 일성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명순 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어릴 적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일제 강점기 때 학교를 다녔어요. 제가 1932년 생이거든요. 소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려는데 마침 해방이 된 거에요. 해방 이후에는 사회가 혼란스러워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어요. 1년 가까이를 무정부시절처럼 보냈으니까요. 정부 수립 이후 조금씩 사회가 정리되어갔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그것이 항상 마음에 남아 있어요.” 과거를 회상하며 학업을 중단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던 이명순 씨는 어찌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못 배워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지 않겠어요? 해방 이후에는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학교를 못 가게 되었고, 이후에 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잖아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는 차츰 뒤로 밀려났어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지, 학교는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이명순 씨의 사연은 학업을 중단한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을 돌보며 당장의 생활을 해결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은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딸이 독일에 있는데, 대학교 때 유학을 나가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90년대 초였으니까, 여대생이 혼자 유학을 나간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못 배웠다는 한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하고 싶은 공부를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딸을 공부시키면서도 내가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고요. 그러다 잠시 독일에 머무르게 됐는데, 거기서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어요.” 독일에 정착한 딸에게 갔다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명순 씨는 멋쩍게 웃었다. 어린 손자를 데리고 마트에 나갔다가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고생을 했던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경험한 이명순 씨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때가 팔순을 앞둔 나이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몇 군데에서 거절을 당하다가 일성학교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스스로에게 ‘참 잘 했다’라고 말해줬어요.
배워야 하는 게 참 많아서,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영어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꼼꼼하게 필기를 하는 이명순 씨

영어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꼼꼼하게 필기를 하는 이명순 씨

깨달음의 기쁨과 새로운 도전
일성여중고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중고등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로, 10대부터 80대까지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명순 씨 또한 광고를 보고 스스로 문을 두드렸다.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지금도 입학할 때 떨렸던 마음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책상에 앉아 수업을 받는 것도, 안 해본 시험을 쳐야 하는 것도, 영어 뿐 아니라 다른 과목을 배운다는 것도 모든 게 신이 났어요.” 학교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사는 이명순 씨는 매일같이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도 즐겁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퇴근길 직장인들과 함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야 함에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역사를 처음 배웠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소학교를 다녔다지만 그때는 우리 역사를 배우지 못했거든요. 드라마나 뉴스에서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내용을 알게 되니까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껴요. 해본 적 없는 공부를 하려니까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따라가기가 버겁긴 하지만, 배운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해요. 오히려 보람 있어요.” 여고생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말하는 이명순 씨를 보며 그간의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꼬박꼬박 ‘선생님들이 참 좋으시다’고 말할 때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었다. “국어가 참 어려워요. 우리말이니까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사용해 왔지만, 한번도 배워본 적은 없었어요. 학교에 와서 처음 국어를 제대로 배우는데 알면 알수록 어렵더라고요. 쌍받침이나 겹받침은 여전히 헷갈려요. 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틀린 글자를 바로바로 고쳐주거든요. 그런데 오늘 들은 내용을 내일 잊어버려요. 그럴 땐 이렇게 실력이 안 되어서 계속 공부를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해봐요.”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표정으로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며 조심스럽게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수능 날은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수능이 이런 거구나, 하고 경험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대학교 면접 날에는 정말 떨렸어요. 딸 아이 시험 칠 때도 이렇게 떨었나 하는 생각을 할 만큼 벌벌 떨었어요. 2019년에는 대학에 다닐 거에요. 벌써 두 군데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나에게도 이렇게 기쁜 날 이 있구나 싶어서 소리도 질러봤어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에요.” 이명순 씨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전공에 대해 고민한 끝에 일어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닌 덕분에 일본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는데 두 곳 모두 합격 통지를 받고 보니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랑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죽어도 한번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도전했어요. 학교에 다니니까 오히려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동안 어딜 가면 못 배웠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말 한마디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괜히 용기가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그 사람들의 기를 받아 더욱 젊어지는 것 같아요. 어제도 혼자 누워서 ‘내가 중간에 포기했으면 이런 좋은 기회도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은 학교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숙제를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이명순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입학을 해야 해서 독일에 다녀올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손자랑 나란히 앉아 받아쓰기를 할 때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말하는 이명순 씨. 대학 입학을 앞둔 소회를 물으니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스로에게 ‘참 잘 했다’라고 말해줬어요. 배워야 하는 게 참 많아서,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크게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이명순 씨, 포기를 생각하지 않는 긍정의 마음은 용기 있는 그녀의 다음 도전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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