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순 김효근 부부는 평일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주말에는 마라톤대회장에서 항상 함께 한다.

김미순 김효근 부부는 평일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주말에는 마라톤대회장에서 항상 함께 한다.

스페셜 인터뷰 1

장애인들에게
밖으로 나올 용기를 주고 싶어요

시각장애인 김미순-김효근 부부 마라토너

김미순, 김효근 부부는 국내 마라토너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이다. 마라톤대회가 있는 날이면 부부가 손을 잡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후천성 시각장애인인 김미순 씨는 남편 김효근 씨와 50㎝ 남짓의 끈을 연결하여 대회가 있는 날이면 ‘사랑의 동반주’를 펼친다.
정윤희 사진 김민정(Bomb Studio)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웃는 김미순 씨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웃는 김미순 씨

갑자기 찾아온 실명 마라톤으로 이겨내
“출발선에 서면 늘 다짐하는 게 있어요. 아무 사고 없이 다치지 않고, 둘이 꼭 완주하자. 다치더라도 조금만 다치자.”
올해로 마라톤을 시작한 지 15년째에 접어드는 김미순 씨는 출발선상에서 늘 두려움과 마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번도 마라톤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그녀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치는 게 무섭고 두려우면 문 밖으로 나설 수가 없어요. 결국 갇혀 있어야 하는데, 다칠 각오를 하고 씩씩하게 나서면 더 좋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남편 손을 잡고 함께 극복하자고 외쳐요.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운명처럼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김미순 씨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극복이 더욱 남다르다. 1988년 눈 안에 염증이 생겨 시력을 잃는 희귀병인 베체트병을 진단 받은 후 오랜 시간을 좌절하며 보냈다. “30대에 진단을 받고 40대에 완전히 실명을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이야 조금이라도 앞을 볼 수 있었을 때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을 걸, 하는 후회가 드는데 그때는 장애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멀쩡히 다 보였거든요.”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김미순 씨는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점점 시력이 나빠져 어느 날 남편 겉옷의 줄무늬가 흐릿하게 보이더니, 결국 맞은 편 건물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완전히 시력을 잃었을 때는 정신세계가 무너졌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좌절은 그녀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때 새롭게 시작한 게 마라톤이었다. 그리고 마라톤을 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마라톤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 말하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건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매일 헬스장에 가서 한시간씩 뛰었어요. 집에만 있는 시간을 괴로워하니까, 운동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한시간씩 런닝머신을 하니까 할 만한 거에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마라톤 해볼까? 라고 내뱉었죠. 그랬더니 남편이 덜컥 강화해변마라톤대회 10㎞를 등록해온 거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김미순 씨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 지도 몰라서, 동반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대회를 앞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막내 동생에게 함께 뛰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두사람은 겁 없이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좋더라고요. 매일 갇혀 있다가 마라톤대회에 나가니까 마음껏 뛸 수 있잖아요. 그리고 뛰다 보니까 스스로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지구력이 뛰어나더라고요. 동생도 잘한다고 칭찬해줬어요. 그런데 계속 함께 뛰기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대회에 참가한 후 김미순 씨는 마라톤에 대한 재미가 붙었다. 혼자 뛰는 것보다 야외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린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독으로 출전이 어려워 동반주가 있어야 했다. 남동생을 시작으로 함께 일하던 직원, 성당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라톤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매번 조금씩의 불편을 느껴야 했다. “남의 손을 잡고 뛴다는 게 쉽지 않아요. 서로 호흡을 맞춰야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힘든 소리를 하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불편한 게 있어도 참고, 힘들어도 아닌 척 했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죠. 풀코스는 당신이 같이 뛰어줘야 할 것 같다고.” 김미순 씨는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서 풀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풀코스를 뛰려니 동반주가 없었다. 남편인 김효근 씨는 그렇게 김미순 씨보다 1년 늦게 마라톤에 입문하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내가 뛰겠다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뛰어주나 싶어서 뒤늦게 마라톤에 입문했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남들처럼 다 할 수 있다고. 잘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김미순 씨의 마라톤대회 풀코스 기록증과 부부가 함께 다녔던 대회 메달들

김미순 씨의 마라톤대회 풀코스 기록증과 부부가 함께 다녔던 대회 메달들

마라톤으로 행복과 용기 얻어
부부는 함께 뛰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무작정 부딪쳤다. “넘어지기도 많이 했어요. 내가 먼저 넘어지면 남편도 덩달아 넘어져서 바닥을 구른적도 있어요. 지금은 미리 알려줘요. 오른쪽으로 갈거야, 왼쪽으로 갈거야 하면서요. 턱이 있으면, 발을 높이 들어야해~ 라고 말하고요.” 김미순 씨가 마라톤을 통해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다는 남편 김효근 씨. 그렇게 두 사람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사랑의 동반주를 펼치고 있다. 흔히 마라톤을 두고 ‘극한의 스포츠’라고 말한다. 그만큼 42.195km라는 거리는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거리이다. 그런데 김미순, 김효근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려운 도전을 척척 해나가고 있다. 풀코스 100회 완주는 물론 각종 울트라마라톤(10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도 모두 석권하였다.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은 강화~강릉 국토횡단 308km, 부산 태종대~임진각 국토종단 537km, 해남~고성 국토종단 622km 등 3개 대회를 모두 완주하는 것을 말한다. “마라톤은 보약 같은 거예요. 약이라 생각하며 뛰어요. 부부가 매일 좋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싸워도 금방 풀려요. 싸워도 손을 잡고 같이 가야 하거든요. 싸우다가도 어딜 잠깐 가려면 손 좀 잡아줘~ 라고 말을 하니까 오래 갈 수가 없지요.” 마라톤을 통해 부부 사이가 더욱 좋아졌다고 말하는 김효근 씨는 마라톤을 시작하고 가족이 더욱 끈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힘든 운동을 함께 하니까,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이 커졌어요. 24시간 붙어있어도 할 말이 너무 많고, 여전히 좋아요. 만약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장애를 얻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거 같아요.” 김미순 씨 역시 마라톤을 통해 가족을 얻게 되었다며 활짝 웃었다. 요즘은 울트라마라톤대회가 열릴 때면 세 식구가 함께 참석한다. 이를 두고 부부는 ‘한 달에 한번씩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라고 말했다. 청남대울트라마라톤 100㎞ 코스에 도전할 때 우연히 동행했던 딸이 부모님의 도전을 지켜보며 자발적으로 서포터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는 대회 참석을 위해 주말에는 가게 운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주말을 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웃으며 “주 5일 일하는 카센터 본 적 있으세요?”라고 말하는 김효근 씨는 지금의 생활에 훨씬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어요. 손님이 다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고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질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다 제 욕심이더라고요. 물론 손님이 줄긴 했어요. 그런데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에요.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운동을 하니 건 강해지고, 가족과 함께 하니 더욱 친밀해졌어요.” 생활을 걱정하는 질문에 김미순 씨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걸 이룬 다음에 하겠다는 건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아요. 마라톤은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그러니, 지금 해야 하는 거에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을 만큼 밝은 성격의 김미순 씨는 마라톤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발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장애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요. 어려워하지 말고 떳떳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장애인이 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남들처럼 다 할 수 있다고. 잘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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