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일러스트

문영미, <초록지붕집>,
145.5×89.4cm, Oil on canvas, 2011년, 어린 시절에 살았던 우리집은 낡고 허름했다. 한여름에는 너무 덥고 한겨울에는 너무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집을 생각하면 금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그곳에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항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나도 지금 그런 집을 만들고 있을까.

설렘을 생각하다

모든 시작의 힘은 행복한 집

가족이 함께하는 집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행복이 창문 너머로 퍼져나갈 것만 같다.
조정육(미술평론가) 그림 문영미

어제는 평소 존경하는 분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 분은 판교에 있는 한 중견기업의 부사장으로 나의 책이 인연이 되어 알게 된 사이다. 서로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큰 울림을 주어 내 삶이 풍부해진 느낌을 받는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다 온 사건을 듣게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C부사장이 회사에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 있는 그의 아내가 전화를 했다. 며느리가 갑자기 심하게 아파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C부사장은 자신이 곧바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의 아내가 손주까지 안고 며느리를 부축해 병원에 데려갈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C부사장은 며느리를 차에 태워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시라도 더 빨리 며느리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였다. 올 해 환갑을 지낸 사람이 며느리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주일 전에 손주가 감기가 걸려 입원을 했으니 며느리가 얼마나 애가 탔겠어요. 더구나 친정어머니가 암수술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자식까지 아프니 마음고생이 심했겠지요. 그래서 며느리가 손주 퇴원하자마자 긴장이 풀어졌는지 쓰러지게 된 것 같아요. 병원에는 가야 하는데 아이 맡길 데는 없고, 출근한 남편이 걱정할까봐 전화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한 모양인데 이럴 때 시아버지가 도와줘야지요.” 세상에 저런 시아버지가 있을까. 친정아버지라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른들이 어른 노릇을 잘해야 젊은 사람들이 따르는 법인데 어른 노릇은 하지 않으면서 맨날 권위나 내세우고 의무만 앞세우니까 며느리들이 시댁이라면 질색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부사장님처럼 어른이 먼저 배려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떤 며느리가 시댁을 싫어하겠어요. 저도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오늘 배운 대로 따라해야겠어요.”나도 아들이 둘이다 보니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때 우리 집에 들어온 새 식구가 마음 편안하게 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틱낫한 스님의 『아미타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정토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사바세계보다 더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토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편안하고, 탁 트이고 홀가분할 때면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전부 저절로 정토가 되는 것이다.” 새해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날인데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눈뜨는 아침부터 새롭다. 1월 1일의 아침 해가 특별히 밝아서가 아니다. 묵은 감정을 털어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새롭다. 올해는 꼭 이것 하나만은 실천해야지. 굳은 결심과 함께 맞이한 설렘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새해의 계획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그 모든 출발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옆에 있는 사람도 귀한 줄 알아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된다. 나만 정토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정토에 사는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 그렇게 귀한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은 그곳이 어떤 곳이든 행복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된다. 집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길거리든 그곳이 모두 정토가 되고 천국이 된다. 남에게 먼저 요구할 필요도 없다. 내가 먼저 실천하면 된다. 어른이 먼저, 직장 상사가 먼저, 많이 가진 사람이 먼저 시작하고 실천하면 된다. C부사장이 사는 집은 낡고 오래 되었어도 행복할 것이다. 우리집도 그런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 PDF다운로드
  • URL복사
  • 인쇄하기
  • 이전호보기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