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관

시작의 순간

출발의 두근거림

누구나 처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행동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이다. 첫사랑, 첫키스, 첫 여정 등.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는 시작은 지켜보는 사람들까지도 설레게 한다.
송경원(씨네 21 기자, 영화평론가)

첫만남의 두근거림이 넘치는 영화 500일의 썸머 한장면

사랑에 얽힌 기억은 대개 뒤죽박죽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마치 돋보기를 쓰고 대로 한 가운데를 걷는 것이나 진배없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아도 좋은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 결과 마치 볼륨이 고장 난 라디오마냥 커졌다 작아졌다 널뛰는 감정에 맞춰 기억의 크기도 수시로 왜곡된다.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는 사실 그리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고, 우연히 마음이 통했고, 사랑을 나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하다 결국엔 헤어진다. 하지만 사랑의 비극은 속도가 각자 다르다는 데 있다. 여자의 연애 모래시계가 진즉에 끝나버린 것과 달리 남자의 모래는 한참 남아 있고 도대체 왜 헤어져야 하는지 번민을 시작한다. 그 과정을 그냥 보여줬다면 밋밋하고 보편적인 또 하나의 연애담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500일의 썸머>의 특별한 점은 500일이라는 연애의 시간을 남자의 시점에서 자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500일이라는 연애 카운트와 함께 시작한다. 488일이 된 연인은 벤치에 앉아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숫자는 카운트 1로 돌아간다. 톰과 썸머가 처음 만나는 날이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짧은 홈비디오 영상이 지나가면 이제 화면은 290일로 넘어간다. 아마도 실연의 충격에 시달리는 듯한 톰이 접시를 깨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장면. 톰을 위로해주려 모인 친구들은 묻는다.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줘.” <500일의 썸머>는 한 남자가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복기하는 영화다. 분명 실연의 상처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라가는 영화건만 영화 전반이 재기발랄하고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져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간단하다. 영화 내내 첫 만남의 두근거림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숱한 다툼의 기억조차 그립게 만드는 달콤한 기억들. 그 설레는 순간이 지워지는 건 오로지 다음 설렘이 찾아왔을 때 뿐이다. 그렇게 썸머(여름)가 가고 어텀(가을)이 오면 영화도 끝이 난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과 함께.

세상을 바꾼 시작점, 여행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사진

1952년 아르헨티나의 한 의대생이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난다. 다소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23살의 패기 넘치는 청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열병에 시달렸고, 단짝 친구와 함께 낡은 모터사이클 한 대에 의지해 8,000km에 달하는 여정을 끝내 완료한다. 그리하여 그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 청년의 이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이후 쿠바 혁명의 영웅이자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거듭난 바로 그 ‘체 게바라’다. 여행은 젊은 게바라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그는 여행을 통해 남미 대륙의 실상과 세상의 불합리함을 목격한다. 1950년대 남미의 여러 나라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가 들어선 상태였고, 이들은 외국자본의 횡포를 용인하며 자국의 빈민층을 착취하기 여념이 없었다. 극심한 빈부격차에 피폐해진 이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들은 청년 게바라는 분노한다. 체 게바라가 오늘날까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로 그 불의에 대한 순수한 분노와 이를 표현한 행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영웅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평범한 얼굴을 한 청년이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는 아름다운 여정이다. 무릇 세계와 충돌하고 깨지고 분노하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라 할 만하다. 8개월간의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충분했다. 게바라는 여행을 했다. 여행과 관광은 안데스 산맥의 시작과 끝 지점만큼 거리가 있다. 관광(觀光)은 문자 그대로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행위다. 반면 무리 여(旅)자에 갈 행(行)자를 쓰는 여행(旅行)은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피부로 비비는 과정이 수반된다.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수인 것이다. 중산층의 평탄한 가정에서 자란 청년 게바라는 여행을 통해 종전에는 몰랐던 세계와 만나고 충격을 받은 후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세계가 깨어진 다음에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 세계와 몸으로 부딪치고 자신이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세계가 깨지는 걸 경험. 아마도 그 아프고 고단한 시간이야말로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영웅 체 게바라의 후광이 아닌 인간 게바라의 흙먼지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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