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이봉사단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해옥 씨

단정이봉사단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해옥 씨

행복한 동행

이웃사촌 머리 모양, 사랑으로 곱게 곱게

단정이봉사단

세심한 가위질이 머리카락에 닿는다. 수더분한 이야기가 즐거이 오간다. 어느새 어르신 앞에 나타난 손거울 하나. 매무새를 살피는 눈빛이 점점 환해진다.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콧노래 부르며 짐을 챙기는 단정이봉사단 사람들. 구로구를 돌며 이웃사촌의 머리를 매만지는 그녀들 손길에는 따스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강진우(자유기고가) 사진 이원재(Bomb Studio)

(왼쪽) 구로4동 경로당을 찾아 미용봉사를 하는 단정이봉사단 (오른쪽) 바리깡은 봉사날마다 단원들과 함께하는 미용도구 중 하나이다.

(왼쪽) 구로4동 경로당을 찾아 미용봉사를 하는 단정이봉사단 (오른쪽) 바리깡은 봉사날마다 단원들과 함께하는 미용도구 중 하나이다.

16년째 걸어온 미용 봉사 외길
구로4동 경로당의 할머니방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간다. 한가운데에 의자 다섯 개가 놓이자 가위, 미용 가운, 빗, 손거울 등 잘 관리된 미용 도구들이 주위로 모여든다. 곧 의자 뒤에 자리를 잡고 선 헤어 디자이너 다섯 명. 구로4동 경로당 전용 미용실이 문을 여는 순간이다. 어느새 어르신들이 하나둘 입장한다. “아버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김해옥 회장이 한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든다. “잘 지냈지?” 살갑게 인사를 건넨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저번 그 스타일로?” 그녀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 자르는 내내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주고받는 두 사람. 보아하니 한두 번 만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때 김해옥 회장이 슬쩍 귀띔한다. “한 달에 한 번씩, 15년째 여기에 오고 있어요. 어르신들 머리 스타일은 물론이고 웬만한 집안 사정도 다 꿰뚫고 있죠.(웃음)” 단정이봉사단은 그 이름답게 용모를 단정하게 가꾸며 봉사한다. 구로구에 사는 우리네 이웃들이 손님. 2003년 6월 발대식 후 지금까지 구립 경로당과 장애인 복지시설을 두루 돌아다니며 활동했으니, 벌써 햇수로 16년째다. 그런데 단정이봉사단이 걸어온 세월을 되짚다 보니 문득 특이한 점 하나가 떠오른다. 구로구자원봉사센터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단정이봉사단은 자생적으로 탄생한 봉사단체가 아니다. 2003년 3월 설립된 구로구자원봉사센터 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것. 여기까지 들으면 자발성과 구심점이 없을 것 같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15명 단원 한 명 한 명이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고 봉사에 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원들이 미용 봉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로구자원봉사센터의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명절 전후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울고 웃었던 기억은 단원 모두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봉사단의 든든한 동반자, 구로구자원봉사센터
단정이봉사단이 봉사에 나서는 날, 그녀들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사람이 있다. 구로구자원봉사센터 배영호 주임이 그 주인공. 그는 줄곧 단정이봉사단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데, 활동 범위가 자못 흥미롭다. 단원 모집, 봉사 일정 조율, 교통편 및 실비 지원 등 봉사단 활동과 관련된 제반 사항 대부분을 배영호 주임이 도맡고 있는 것. 덕분에 봉사단원들은 오로지 미용 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단정이봉사단 창단멤버 중 한 명인 최윤선 단원은 “이 점이 16년째 꾸준히 봉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며 말을 이었다. “요즘은 봉사하고 싶어도 허락해 주는 곳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구로구자원봉사센터에서 직접 나서서 시설을 주선해 주시고 일정을 관리해 주시니, 봉사자 입장에서 참 좋아요. 여기에 교통편과 식사까지 제공하니 더할 나위가 없죠.” 단정이봉사단이 독거노인 거주지에 직접 방문해 일대일 맞춤형 미용 봉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구로구자원봉사센터의 공이 크다. 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의 거주지를 파악할 방법이 없는데다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았다고 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미용 봉사를 거절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로구자원봉사센터를 거치면 이른바 ‘봉사의 공신력’이 생겨서 조금 더 쉽게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이 단원들의 설명. 3년째 단정이봉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연임 단원은 민관 협력 봉사 체계의 중요성에 대해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봉사자의 자발적인 참여는 봉사의 기본이자 출발점이에요. 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죠. 봉사 한 번을 위해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구로구자원봉사센터는 이런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봉사자들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을 잘 마련해 주고 있어요. 앞으로 이 같은 민관 협력 체계가 널리 퍼져 나가서 많은 분들이 행복하게 봉사하셨으면 좋겠어요!”

(왼쪽)자신의 전문분야를 봉사로 이어갈 수 있는 게 큰 기쁨이라는 단정이 봉사단원들  (오른쪽)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으며 웃음꽃이 피어난 봉사단원과 경로당 어르신들

(왼쪽)자신의 전문분야를 봉사로 이어갈 수 있는 게 큰 기쁨이라는 단정이 봉사단원들 (오른쪽)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으며 웃음꽃이 피어난 봉사단원과 경로당 어르신들

세상을 감동시킨 ‘성실한 진심’
단정이봉사단은 총 세 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첫째, 둘째, 넷째 주 화요일에 하루 종일 미용 봉사를 다닌다. 어르신들과 장애우들의 머리를 주로 다듬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사연도 남다르다. 중국을 고향으로 둔 오상은 단원은 허리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장애우들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고되고 외로운 타향살이를 이겨 낸다. 자식들을 독립시킨 후 남모를 적적함에 힘겨워하던 정현옥 단원은 단정이봉사단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명절 전후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울고 웃었던 기억은 단원 모두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김해옥 회장은 “바로 이분들을 위해 우리 봉사단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 번 머리를 자를 때마다 열 번 이상 허리를 세워 줘야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맨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머리를 잘라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예요. 그럼에도 저희는 그분들을 꾸준히 찾아뵙습니다. 저희가 아니면 머리를 자르기 어려운 분들이니까요. 이런 책임감이 지금껏 저희들을 움직인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녀들의 진심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곧 세간의 이목이 단정이봉사단으로 쏠렸다. 2015년 열린 ‘제27회 서울시 봉사상’에서 단체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하철 1호선 시청역과 시민청을 잇는 연결통로 한편에 ‘단정이봉사단’ 여섯 글자가 새겨졌다. 서울 시정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기리는 ‘서울의 얼굴’ 명예의 전당에 영구 헌액된 것이다. 봉사단체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지만, 단원들의 봉사패턴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화요일마다 미용 도구를 챙겨나가고, 어르신들과 장애우들을 마주하며 행복하게 웃음 짓고, 자신들의 손길로 이웃사촌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어줄 수 있음을 고맙게 여긴다. 단정이봉사단의 남은 소원은 단 하나, 봉사단 규모가 확대되어 보다 많은 독거노인들을 찾아뵙는 것이다. 어쩌면 바람도 이토록 한결같을까. 그 고운 마음에 감탄하고 있자니 김해옥 회장이 해맑게 외친다. “미용 봉사가 즐겁고 행복하니까요!” 참으로 놀라운 봉사 열정이다.

행복한 동행’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나 현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직접 봉사하는 곳, 혹은 알고 계신 곳을 추천해주세요.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시면, 한 팀을 선정해 <빛으로 여는 세상> 취재팀이 맛있는 간식을 들고 직접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메일, 또는 엽서를 통해 참여 바랍니다.
메일 doodoo1@kepco.co.kr

‘단정이봉사단’에서 이·미용 자격증을 가진 봉사단원을 모집합니다.
홈페이지: guro.seoulvc.kr(구로구자원봉사센터) 문의전화: 02-860-2532(구로구자원봉사센터)

  • PDF다운로드
  • URL복사
  • 인쇄하기
  • 이전호보기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