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영화관
영화로운 순간, 거장은 빛으로 말한다
한국영화의 화양연화, 칸 영화제를 빛낸 우리 영화들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로 불리는 시기가 있다. 2000년 중반, 한국영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의 대표작이라 부를만한 걸작들이 즐비하다. 아직 제작사들이 나름의 힘과 독립성을 유지하던 시기,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였다. 물론, 보다 사실적인 야외촬영으로 현장의 영화를 지향하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도 빠질 수 없다.
글 송경원(씨네 21 기자, 영화평론가)
<올드보이>가 아직까지 기억되는 건 당시의 흥행 성적(320만 명) 때문이 아니다. 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후 아직까지 해외 영화계에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중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지금 봐도 신선하지만 <올드보이>의 소재와 접근 방식은 가히 파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이 과감히 도전한 것은 근친상간의 코드였다. 당시 상업영화의 수위를 훌쩍 뛰어넘은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건 제작사가 감독의 연출, 편집권을 철저히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드보이>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적인 소재를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비전으로 충실히 옮겨올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과장된 색감과 꽉 채워진 미술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적 시공간을 창조한다. 소품 하나 미장센 하나에도 상징과 의미를 빽빽이 부여해 관객들이 여러 차례 뜯어봐도 끊임없이 발견할 요소들이 나온다. 비유하자면 마치 퍼즐을 만드는 자와 푸는 자의 게임 같다. 아마도 그 빽빽한 미장센의 출발, 혹은 정점에 <올드보이>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원색을 적절히 활용한 선명한 영화다. 주인공 오달수(최민식)을 비롯해 인물들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많은 만큼 감정에 맞춰서 어둡고 진한 색깔들을 과감히 차용한다고 해도 좋겠다. <올드보이>는 한마디로 세트의 영화다. 세트에 서만 구현할 수 있는 어둡고 고급스럽고 묵직한 색감들을 상황에 맞춰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지금도 여러 영화에서 오마주 되는 오달수의 장도리 액션 시퀀스는 한 폭의 정물화 같다. 창백한 형광 조명과 콘크리트의 질감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복도의 음영과 뒤섞여 횡으로 연결되는 긴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롱테이크를 통해 한 호흡으로 잡아낸 액션 시퀀스는 감독의 붓 끝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는 것이다. 배우의 헐떡이는 숨소리 하나까지 철저히 조율된 이 화면을 지배하는 건 결국 박찬욱이라는 필터를 거친 빛, 색감의 재현이다. 스크린을 화폭으로 삼아 박찬욱은 적재적소에 자신이 원하는 빛을 뿌리는 인상파 화가 같다.
반면 정반대의 지점에서 빛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감독도 있다. 박찬욱 감독이 세트라는 통제된 공간을 활용한다면 이창동 감독은 야외촬영, 현장의 영화를 지향한다.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찍기 위해 수십 번을 촬영했고, 사실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까지 감수했다는 건 유명하다.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밀양>은, 빛을 다루는 이창동 감독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상당 부분 현지 로케이션 및 야외 촬영을 진행한 만큼 세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명을 처리했다. 대개 야외 촬영이라고 하면 그냥 바깥에서 찍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햇볕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가 영화 전체의 톤을 좌우하는 감독의 연출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떤 순간, 어떤 빛을 포착하는가에 영화의 생명이 달렸다고 해도 좋겠다. <밀양>은 소도시 밀양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여자가 아들을 유괴당해 잃은 후 겪는 고통에 대해 묘사한다. 이창동의 카메라는 여인의 흐느낌과 분노, 괴로움을 끈질기게 따라간다. 여기서 유괴라는 사건 자체는 의외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응시하고자 하는 건 고통을 삼켰다 토해내는 여인의 몸부림,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포착한다. 때문에 이 영화의 조명, 빛의 활용은 인위적인 순간들을 배제한다. 철저히 그 순간에 맺힌 어떤 것, 설명되지 않는 것, 모호한 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의 연기, 호흡과 하나가 된 순간에 라야 담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도 이를 찍는 카메라의 심정은 스쳐 지나가는 찰나를 담는 사냥꾼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윽고 엔딩에서 여자 신애(전도연)를 비추는 마당의 한 줌 햇볕이 강렬하게 각인되는 건 그 성격을 정의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는 이에 따라 따스하게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심하고 평등하게 내리쬐는 것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관객을 향해 완벽하게 열려있다. <올드보이>와 <밀양>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빛을 담지만, 영화의 태도를 놓고 보자면 같은 방향을 향하는 닮은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