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읽는 오늘
우리가 헤아려야 할 물 이야기
매일 저녁, 샤워기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여름이면 물을 찾아 멀리 떠나지만, 정작 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있을까. 물의 유한함과 소중함에 대해 익히 듣고 말해오면서도 실제로 알고서 실천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한 길 사람 속 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운 물에 대한 이야기.
정리 편집실
평균 6km. 이는 아프리카에서는 물을 구하기 위해 하루에 걸어야 하는 거리를 말한다. 걷는 것 뿐만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평균 5~6시간을 물을 구하는 데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표면의 약 71%가 물로 뒤덮인 행성. 그래서 ‘푸른 지구’라 불리는 이곳에서 왜 이토록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일까.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얼핏 풍부하게만 느껴지는 물.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에게 물은 너무나도 귀하고 부족한 자원임을 알 수 있다. 지구상의 물의 약 97.5%는 염분이 함유된 물이고, 나머지 2.5%만이 마실 수 있는 담수, 즉 강이나 호수에서 볼 수 있는 민물이다. 그마저도 담수의 68.9%는 극지방에 얼음 형태로 얼어 있고, 30.8%는 땅 밑으로 흘러 정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토록 어렵사리 얻은 물이 전부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의 6명 중 한 명은 깨끗한 물을 접하지 못한다. 이는 여러 가지 질병의 감염 원인이 되고, 오염된 물로 수확한 작물은 다시 새로운 병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된다.
세계물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20초마다 한 명꼴로 수인성 질병으로 어린이가 사망한다. 우리가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물로 인해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비위생적인 물이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1900년대 이후, 인구증가율 대비 물 사용량은 2배 이상 증가해왔다. 이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라 우려하는 2025년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입니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거나 환경 이슈가 떠오르는 때면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임을 인지한 지 십여 년이 지나도록 물을 사용하는 생활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환경에, 산마다 강줄기가 흐르고, 수도꼭지에서는 언제나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상수도 보급률은 대부분 90%를 넘으며,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몇 가지 수치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 평균 강수량은 1,277mm로 강수 총량은 1,297억㎥에 이른다. 그러나 그중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넉넉지 않다. 강수 총량의 약 26%, 즉 333억㎥만을 하천수, 댐용수, 지하수 유입 등으로 확보하여 사용할 수 있다.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은 1인당 강수량이다. 수자원 총량을 인구수로 나눈 것을 1인당 강수량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연 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6배지만,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6에 불과하다. 물 빈곤지수(WPI)를 기준으로 순위를 살펴보면 세계 43위, OECD국가 중 20위를 차지한다. 물 부족 국가를 이르는 새로운 말인 ‘물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물 소비량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를 잊은 듯하다.
국제물협회에서 발표한 세계 주요 도시 1인당 1일 물 사용량을 비교해보니, 서울 280~290ℓ, 도쿄 200~250ℓ, 런던은 100~200ℓ로 나타났다. 물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나라임에도, 이렇다 할 경각심 없이 세계 여느 대도시보다 1.5~2배 가까이 물을 쓰고 있다. 개인의 물 사용 습관도 살펴봐야 할 때이다.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한 장을 걸친 당신. 당신은 이미 16,000ℓ의 물을 소비했다. 씻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물을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가상수(virtual water)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상수는 ‘어떤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사용되는 물의 총량’을 뜻하는 것으로, 이러한 가상수의 이동을 비교적 익숙한 용어인 탄소발자국에 빗대 물발자국* 이라고도 부른다.
티셔츠 400ℓ, 청바지 1,200ℓ, 햄버거 2,500ℓ, 그리고 A4용지 10장은 100ℓ의 가상수를 소비한다. 쉬운 사례로 커피 한 잔의 가상수는 140ℓ인데, 이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커피콩을 가공하는 등에 사용된 물의 양을 측정한 것이다.
가상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어느 지역의 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다음 사례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인도에서 수출용 콜라 1ℓ를 생산할 때마다 해당 지역의 물 9ℓ를 소비한다. 때문에 인도는 콜라를 생산하여 수출한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100여 미터나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주변 260개 우물이 고갈되어 쌀 수확량의 10%가 감소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은 가상수 교역을 통해 수자원 고갈문제 해결에 힘을 쏟고 있다. 가상수 교역이란 물이 풍부한 국가에서 가상수가 많이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물이 부족한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가상수 수입국은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유네스코 물교육연구소는 ‘가상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의 소비에서 국가 간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 이탈리아, 영국, 독일에 이어 가상수 수입국 5위로 상위권 국가에 속한다.
물 8ℓ.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하루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 혹은 양변기 레버를 한 번 눌러 흘려보내는 물의 양이라는 것. 대한민국 가정용 양변기의 평균 수조량이 바로 8~12ℓ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장실을 한 번 이용하는 사이, 누군가의 하루치 물을 다 써버리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1인당 1일 가정용수 사용량은 약 280ℓ. 용도별 사용 비율로 나열하면, 양변기 25%, 싱크대 21%, 세탁 20%, 목욕 16%, 세면 11%, 기타 7% 순이다. 가정에서 가장 많은 물을 소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화장실, 그 중에서도 양변기다. 목욕이나 세면보다 양변기를 통해 소비되는 물의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이는 절수형 양변기나 절수형 버튼이 달린 제품으로만 교체해도 물을 크게 아낄 수 있다. 더불어 연비가 우수한 차를 이용하고, 플라스틱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것. 이는 경제적인 절약뿐만 아니라 휘발유와 플라스틱 생산에 드는 가상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공공기관이나 공장 등 대규모 시설에서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제때 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정용, 산업용, 농업용으로 물을 이동시키고 처리하는 과정에는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되는데, 이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여 기후변화를 촉진하고, 다시 물 부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을 쓰는 습관도 중요하지만, 절수형 설비 설치와 지속적인 시설 관리 등 한층 더 나아간 투자와 관심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몸과 지구의 약 70%를 이루는 물. 물은 곧 내 몸이자 세계와 같다.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통계자료 : 한국수자원공사, 세계물포럼, 국제물협회, 유네스코 물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