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이미지

빛이 있는 영화관

생명을 창조하는 물의 마술적 색채

물을 배경으로 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사람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1985년 문을 연 지브리 스튜디오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라는 별개의 고유명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일관되고 꾸준한 세계를 창조해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향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이라고 해도 좋겠다.
송경원(씨네 21 기자, 영화평론가)

영화의 한 장면

자연을 애니메이션답게 담아내다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언제나 ‘자연을 어떻게 묘사할까’에서 작품의 첫발을 디뎠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자연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할 것인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내듯 세밀하게 묘사하는 건 지브리가 하고 싶은 바가 아니다. 오히려 선은 단순하게, 터치는 부드럽게, 동선은 부드럽게 살려내는 것이야말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작화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답게, 애니메이션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애니메이션의 철학이다. 사실 영화 이전에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움직이는 영상이란 의미에서 볼 때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거의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출발이 특별했던 건 사진을 기반으로 한다는 건데, 사진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빛으로 찍어낸 판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빛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떨까. 그림은 한마디로 빛과 색에 관한 인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빛과 색을 창작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도 좋겠 다. 그런 의미에서 움직이는 그림인 애니메이션 역시 빛과 색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가 작품의 개성을 좌우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경우 두 명의 거인의 손으로 창조되었다. 한 명은 당연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현한 애니메이션은 비유하자면 변화무쌍한 자연과도 같다. 깊고 넓고 다양하며 생동감 넘친다.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이점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다. 가령 나는 15세기의 변두리 마을을 그리고, 그게 필름이 되었을 때 ‘이건 실사로 못 만든다’는 생각에 굉장히 행복했다.” 미야자 키 하야오는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컨대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보지 말고 벌레가 됐다는 생각 으로 공간을 날아서 무엇이 보일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자연 풍경은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의 한 장면

환상적이면서 익숙하게 묘사한 물의 질감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특히 중요한 질감은 바람과 물의 묘사다. 예컨대 물고기 소녀 포뇨와 도시 소년 소스케의 우정을 그린 <벼랑 위 의 포뇨>는 지브리 특유의 감성이 살아있는 동화다. 이 작품이 특별했던 것은 순수한 동심에 시점을 맞춘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바다’라는 부정형의 액체 상태에 관한 독특한 표현 때문이다. 그 어떤 애니메이션과도 궤를 달리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물’의 묘사는 넘쳐흐르는 이미지를 통해 진한 꿀물처럼 농축 된 상태의 생명력을 전달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포뇨가 파도 위를 내달릴 때 바다의 빛깔과 질감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젤리 같은 포동포동함과 크레파스 같은 푸른 색감이 마치 동화책을 옮겨 온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와 같은 질감은 주로 곤충의 시점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물의 장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은 생명체들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 점성을 높인 것이다. 여기 맞춰 펜선도 작화의 선도 둥글게 처리해 포근한 이미지를 극대화시켰고, 바다에 비치는 햇빛의 복잡 미묘한 빛깔도 일부러 단순화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주제에 맞게 ‘동화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한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물의 이미지는 성장에 관한 은유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는 ‘하쿠’라는 백룡(사실은 강의 이름)의 이름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녀 센은 신들의 세계에서 이름을 빼앗긴 후 마녀 유바바의 온천장에서 일을 한다. 노동의 장소이자 신들의 쉼터이기도 한 온천장은 일본 민담과 설화의 다채로운 일면을 보여주는 신기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 신화적 공간이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 건 단지 신기한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신들을 씻겨주는 뜨거운 온천수의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운 물의 표현을 볼 때마다 ‘저건 흉내 낼 수 없겠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을 빌리자면 “물의 움직임이야말로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익숙한 것”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지브리를 만든 두 명의 거인 중 나머지 한 명은 색채 디자인을 담당한 애니메이터 야스다 미치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부터 30여 년간 지브리의 색을 창조해왔던 그녀는 영화로 치면 촬영 감독 내지 조명감독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조명 감독이 빛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를 고민한다면, 애니메이션의 색채 디자인은 그 결과물인 색을 직접 지정하고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벼랑 위의 포뇨>에 등장하는 강물과 바다는 그 질감이 유사하지만 색은 전혀 다르다. 빛을 컨트롤 하는 자가 영화를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색을 고르는 자가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법 이다. 그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상한 세계를 실현한 숨은 거인이다. 지브리가 그려낸 생명의 마법이 언제까지 이어질진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마지막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것이 작고한 야스다 미치요의 유언 때문이었다고 하니, 부디 지브리의 마법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희망할 따름이다.

  • PDF다운로드
  • URL복사
  • 인쇄하기
  • 이전호보기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