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으면 아이슬란드에서는 9월 초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아이슬란드에서는 9월 초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사진 : 하동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맨 처음 지구가 궁금해질 때
찾아가는 곳

영화 <노아>, <프로메테우스>, <오블리비언>, <트랜스포머>, <인터스텔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공통점은?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작품들이다. 인류 등장 이전의 지구와 인류 멸망 이후의 지구를 더불어 상상할 수 있는 땅이 아이슬란드다.
글 사진 김남희(여행작가)

초월적 평화를 불러오는 판타지적 풍경
아이슬란드에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연습한 곳이 아이슬란드’라는 말이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동안 내내 의문이 들었다. 여기가 정말 내가 살아온 행성 지구인 걸까. 인간계와 천계 사이에 있다는 중간계는 아닐까.
밀려오던 검은 파도가 그대로 굳은 것 같은 용암 평원, 연기를 내뿜는 붉고 뜨거운 화산, 푸른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바다, 융단처럼 부드러운 초록 이끼로 이루어진 초원. 어두운 하늘의 빛줄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폭포,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민둥산, 밤처럼 검은 모래 해변, 부글부글 끓다가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 비취 가루를 뿌린 것만 같은 온천과 단단한 성벽을 이루며 뻗어 나간 빙하. 어디선가 엘프가 나타나 땅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인류가 아직 망가뜨리지 못한 자연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인간의 의지 같은 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인간은 여전히 약자였다.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지닌 자연 앞에서 더없이 왜소한 존재인 나를 깨닫자 쓸쓸해졌다. 그 쓸쓸함은 두려움이 아닌 담담한 체념을 불러일으켰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에 두 손 들고 항복한 뒤에 따라오는 평화.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풍경과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 지역의 페리토모레노 빙하

(왼쪽)최초의 아이슬란드 의회가 탄생한 싱벨리어 국립공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오른쪽)빙하 해변 요쿨살롱.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는 화산과 빙하를 동시에 품었다.

외로우면서 단단한 땅, 그리고 유연한 사람들
“아이슬란드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소수가 떠올라요. 1과 자신으로밖에 나뉘지 않는 소수는 쓸쓸하면서도 고집스럽잖아요.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소수처럼 외로우면서도 단단해 보여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보낸 사진을 보고 내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소수를 닮은 아이슬란드. 그 황량하고 막막한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아이슬란드 인구는 32만에 불과했다. 그중 절반이 레이캬비크 주변에 살고, 나머지가 대한민국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땅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지평선 너머로 간혹 집이 서 있었다. 이웃도 없이 혼자서 서있는 작은 집들이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말이 없고 겸손하면서도 강인할 것 같았다. 과묵한 데다 무표정해서 차가워 보이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면 놀랄 만큼 다정한 이들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었다. 속정이 깊었고, 유연했다. 어떤 이는 유연함이야말로 아이슬란드인의 특질이라고 했다. 예고도 없이 화산이 터지거나 바다가 거칠어지는 나라에서 유연하지 못하면 어찌 살겠느냐면서. 그 유연성이 1980년대에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과 여성 주교를 탄생시켰던 것일까. 제각기 떨어져 살아들 가서인지 아이슬란드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박물관에서 표를 팔던 청년은 록음악을 했고, 버스 운전사는 퇴근 후에 드럼을 연주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모두가 직업을 소개할 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보험회사에서 일해요. 그리고 뮤지션이죠.” “웨이트리스예요. 밤에는 록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구요.” 이 나라에는 예술가가 어디에나 넘쳐났다. 음악도, 미술도 혼자 있는 침묵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연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에서는 많은 것이 신기했다. 숙소에서 뜨거운 물을 틀면 진한 유황 냄새가 나는 미끈거리는 물이 쏟아졌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러시아워에도 버스가 텅텅 비어 있었다. 철저한 신용사회인 아이슬란드에서는 노점에서도 신용카드를 쓸 수 있었다. 동네마다 지열을 이용한 수영장이 있어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따뜻한 물에서 수영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다녀오면 누구나 향수병을 앓게 된다고 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과 얼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왼쪽)칠레 파타고니아의 대표주자인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만난 야생동물 과나코 가족 (오른쪽)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붉어지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바위봉우리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주의할 점
아이슬란드는 떠들썩한 웃음보다는 침묵과 사색이 어울리는 나라다. 아이슬란드의 자연환경이 지켜질 수 있도록 흔적 없이 다녀가는 여행자가 되도록 하자. 참고로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륜차와 사륜차가 갈 수 있는 도로가 정해져 있다. 이륜차를 빌렸다면 산악도로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 사고가 자주 일어나니 보험은 반드시 풀커버리지로 가입하자. 더불어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한여름에도 기온이 급변하며 춥다. 방풍과 방한이 되는 옷을 준비하자. 운이 좋으면 9월 초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으니 여름의 끝 무렵에 가는 것도 괜찮다.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 엘찰텐 지역 피츠 로이 봉우리를 마주하고 휴식 중인 트레커들

아이슬란드 내륙 하이랜드의 란드마날라우가르 지역.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다.

  • PDF다운로드
  • URL복사
  • 인쇄하기
  • 이전호보기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