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이안은 매우 소중한 곳이다. 우리나라보다도 역사가 긴 나라지만 수많은 전쟁으로 국토가 파괴되어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적이나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3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호이안이 얼마나 소중한 곳일까? 현재 베트남에는 다섯 개의 세계 문화유산이 있는데, 그중 두 개가 호이안에 있다. 하나는 호이안 구시가지, 다른 하나는 호이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유적지인 참파왕국의 본거지 미선 유적이다. 그야말로 베트남에는 보물과 다름없는 도시다. 글. 권재원(마장중학교 역사교사,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저자)
시간이 멈추고 지도가 겹쳐진 곳,
베트남 호이안
Hoi An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시간이 멈춘 채 그대로 남아있는 호이안의 매력적인 거리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 베트남 중부의 중심도시 다낭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였다. 다낭을 방문한 그 많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반드시 찾아보는 작은 도시가 바로 호이안이다. 호이안은 투본강 하구에 자리 잡은 인구 12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은 삼십 분이면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구시가지다. 더구나 호이안은 우리나라 관광객에게만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호이안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2018년 기준으로 연 390만 명이나 되어, 오히려 다낭보다 많다. 유명세 덕분에 미국 여행 전문매체 <트레블 플러스 레져(Travel+Leisure)>가 선정한 세계의 관광명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밤이 되면 수많은 홍등에 불이 켜져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호이안의 거리.
호이안에 처음 발을 디디면 그동안 보아왔던 베트남의 풍경과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된다. “여기가 베트남 맞아? 중국 어디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베트남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다니는, 관광객을 성가시게 하던 오토바이들도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사라진다. 한창 떠오르는 신흥국가 특유의 떠들썩한 활기도 사라지고, 200년 전에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거리가 눈 앞에 펼쳐진다.
이제 구시가를 찬찬히 걸어보자. 대부분 건물은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폭이 좁고 속이 깊은 구조로, 2층에 방을 두고, 테라스를 만들어 놓은 베트남 전통 주택이다. 그런데도 중국으로 착각한 까닭은 건물의 장식, 지붕, 가구, 그리고 바깥에 걸어 놓은 홍등이 영락없는 중화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이안의 경관은 베트남이라고 하기에는 중국 같고, 중국이라고 하기에는 베트남 같다. 게다가 중국풍이라고 해도 푸젠, 광둥, 차우저우, 하이난 등 모든 지역이 다 들어있다.
그런가 하면 중간중간 유럽 스타일과 현지 스타일이 섞인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들에는 대체로 고급 레스토랑, 카페, 선술집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살짝 걸음을 뒤로 돌리면 화교 구역과 일본인 구역의 경계였다는 일본 양식의 다리 ‘내원교’를 만난다. 역사지구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이자, 유명한 포토존으로 해가 지면 다리의 불빛이 매우 아름답다. 중국식 건물 중에서는 ‘광조회관’과 ‘복건회관’이 유명하다. 중국에서 온 상인들이 지은 건물로 중국 건축물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무척 화려하다. 특히 광조회관은 중국에서 지어진 건물로 호이안으로 옮겨와 완성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호이안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턴키의 집’, 호이안에서 가장 오래된 집인 ‘풍흥의 집’ 등도 찾아가 볼 만하다.
이 자그마한 도시, 걸어서 잠깐이면 둘러볼 수 있는 구역 안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제야 이 도시의 이름이 호이안(會安)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이름 그대로 ‘같이 모여 편안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 이동하기
• 택시를 타는 경우 한화 1만 5천 원 정도로 가능
• 로컬 1번 버스 타고 가기
•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여행사 버스 이용하기
호이안 둘러보기
• 당일치기로도 많이 가지만, 호이안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1박을 하는 것도 추천.
• 야경을 보기 위해 간다면 더위가 누그러지는 오후 4시 이후가 적당하다.
•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카페, 펍, 길거리 음식 등을 체험해보자.
2000년 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가 만나는 무역항이었던 호이안에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다.
호이안이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중첩된 이채로운 도시가 된 까닭은 이곳이 무려 1800년간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무역항이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내려온 중국, 한국(신라, 고려), 일본 상인들, 남쪽에서 올라온 아라비아, 인도, 스리위자야(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상인들이 호이안에서 만났다. 동서양의 문물이 교환되는 거대한 장터가 열린 것이다. 16세기 이후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상인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이 중 중국과 일본 상인들은 아예 호이안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았다. 한창때는 호이안에 일본 상인들만 1,000명이 넘게 정착해서 살았을 정도다.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호이안은 베트남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도시였다.
이렇게 번창하던 호이안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더 큰 항구가 필요했던 프랑스가 다낭에 거대한 항구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이미 무역 자체도 중국,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이 아니라 프랑스 상인에게 독점된 상황이었다. 이렇게 호이안은 베트남의 망국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호이안의 풍경이 200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동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시간이 멈추고 말았다.
베트남 꽝남성의 남중국해 연안에 있는 호이안은 인구 12만 명의 작은 도시로 과거에는 ‘파이포’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때 번성했던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무역항이 있었고, 현재도 과거 모습 그대로 남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 호이안에게는 이렇게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베트남의 역사는 온통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싸웠고, 독립 이후에는 남북으로 갈라져 싸웠고, 마침내 이 전쟁이 커지면서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과 싸웠다. 호이안의 시간이 멈춰 있는 동안 중요한 요충지로 성장했던 다낭은 이 모든 전쟁을 피해 가지 못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 공군기지, 남베트남 1군단 사령부가 다낭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1969년 인구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대신 끊임없는 베트콩의 공격에 시달렸고, 미군이 철수한 뒤에는 북베트남군의 공격이 집중되는 등 큰 피해를 겪어야 했다.
반면 호이안은 다낭에서 불과 20km 떨어져 있지만, 기적적으로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났다. 별 볼 일 없는 시골 마을로 취급되어 전략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데다, 훤히 열린 강가에 있어서 베트콩 은신처로도 활용가치가 없었다. 당시 호이안에는 한국군 청룡부대 본부가 자리 잡는 등 군부대가 적지 않게 드나들었지만, 그마저도 행정구역만 호이안일 뿐, 호이안 구시가지로부터는 벗어난 곳이었고, 청룡부대가 작전을 펼친 곳도 호이안이 아니라 인근 밀림 속에 자리 잡은 다른 마을들이었다.
조선시대 성행했던 예언서인 <정감록>에는 ‘후천 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열 군데’를 십승지지로 소개하고 있다.
십승지지의 공통점은 대체로 두메산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호이안은 두메산골은커녕 한때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할 정도로 활짝 열린 곳에 있으면서도 이 끔찍한 전쟁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덕분에 호이안은 2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호이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포개진 지도, 멈춘 시계의 도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나고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그동안 지치고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호이안으로 가자. 200년 전 중화풍과 동남아풍이 뒤섞인 독특한 거리를 거닐며, 프랑스식으로 서빙되는 베트남 요리를 즐기며, 투본강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영국식 선술집에서 맥주를 음미하자. 걸어서 30분 거리 안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가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호이안은 복고적인 도시의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멋스러운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일본교로 불리는 내원교와 풍흥 고가(古家), 쩐가 사당, 꾸언탕가(家) 등이 있으며 중국인들의 회합장소로 사용된 복건회관, 무역도자기 박물관,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이 있다.
한전은 지난 2018년 베트남 응이손2 발전사업의 주요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 종합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전이 지분율 50%를 보유하는 응이손 사업은 생산된 전력 100%를 전력판매 계약을 통해 베트남 전력공사에 판매하며, 베트남 정부가 대금 지급 등에 대한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사업구조다. 한전은 25년 운영기간 동안 약 15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응이손2 화력발전소는 한전이 베트남에 진출하는 최초의 발전사업이다. 이 사업의 성공적 이행과 추가 사업 개발로 베트남을 필리핀에 이은 새로운 동남아 거점시장으로 육성·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한편 한전은 필리핀에 다수의 발전사업을 진행하며 안정적인 전력공급으로 필리핀 전력난 해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필리핀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구축하였고, 성공적인 복구와 운영으로 KEPCO의 세계적인 기술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전 최초의 해외 발전사업은 1995년 일본, 홍콩 등 유수의 기업들을 뒤로하고 수주한 필리핀 말라야 650MW 중유발전 성능복구 운영사업이다. 한전 해외사업의 기틀이 된 이 사업은 2011년까지 성공적으로 운영을 마치고 필리핀 정부에 발전소를 이관하였다. 현재 1996년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일리한 1,200MW 가스복합발전소 운영사업이 한전의 대표 해외사업이다. 2022년까지 운영되는 이 사업은 2019년 말 기준 누계 매출 약 2조 3천억 원을 달성하고 대림, 효성 등 20여 개의 국내기업이 기자재 공급 및 시공에 참여해 수출 부대 효과도 1.4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또한 세부 200MW 유동층 석탄화력발전소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정부 발주 사업이 아닌 순수 민간자본 개발사업으로 한전이 시도하는 상업발전소 형태의 사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36년까지 운영되는 이 사업은 세부의 전력 부족 사태 해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전은 2006년 2월 필리핀 현지회사인 SPC사의 총 지분 40%를 0.2억 불에 인수함으로써 SPC 합자사업에 참여하였고, 2018년 12월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닐라에서 ‘칼라타간 태양광 발전소 지분 인수’를 체결하였다. 칼라타간 태양광 발전사업은 필리핀에서 운영하는 다섯 번째 사업이며,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으로는 최초이다.
필리핀 일리한 가스복합발전소
2022년 준공 예정인 베트남 응이손2 화력발전소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