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 빙하국립공원 중 엘찰텐 지역. 세로 토레 봉우리를 뒤로 하고 트레킹 중인 여행자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 빙하국립공원 중 엘찰텐 지역. 세로 토레 봉우리를 뒤로 하고 트레킹 중인 여행자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지구 끝 텅 빈 공간,
그곳에서 마주한 태초의 자연

울티마 에스페란자. ‘마지막 희망’이라니. 한 지역의 이름이 이렇게 시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파타고니아를 품은 어느 주(州)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토록 어울리는 지명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구 끝 텅 빈 공간 파타고니아는 인류가 아직 망가뜨리지 못해 마지막 희망으로 남은 땅이기에.
사진 김남희(여행작가)

과거를 묻지 않는 거인들의 땅, 파타고니아
어디에서부터 이 땅이 시작되고 끝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합의는 없다.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의 파타고니아는 ‘칠레의 푸에르토몬트와 아르헨티나의 콜로라도 강을 잇는 남위 39도 이남 지역’이라고 말할 뿐이다. 빙하와 산, 고원과 낮은 평원을 넘나들며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그 땅을 안데스 산맥이 가로지른다. 파타고니아가 ‘거인들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스페인 침략자들 때문이었다. 마젤란 원정대가 원주민 테우엘체 족과 마주쳤을 때 원주민의 평균 신장은 그들보다 20센티미터 이상 컸다. 평균 신장이 155센티미터에 불과했던 원정대는 당시 스페인에서 대인기였던 소설 속의 거인족 ‘파타곤’이라는 이름을 원주민들에게 붙였다.
오랫동안 파타고니아는 과거를 묻지 않는 땅이었고, 고향을 등진 자들의 안식처이자 방랑자들의 마지막 정착지였다. 작가와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의 땅이기도 했다. 황량하고 거친 고립무원의 대지를 세계의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건 몇 권의 책이었다. 그중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읽고 나는 파타고니아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 지역의 페리토모레노 빙하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 지역의 페리토모레노 빙하

대지를 가로질러 마주한 고결한 빙하
당연하게도 내가 파타고니아에서 처음 한 일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탄 일이었다. 이제는 일부 구간만 남은 상태였지만, 그 작은 협궤 열차는 옛 모습 그대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파타고니아의 대지를 달리고 있었다. 열차는 막막할 정도로 광활한 파타고니아의 대지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지평선 너머로 두꺼운 구름이 걸린 하늘이 펼쳐졌고, 파타고니아의 특산품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기차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파타고니아에서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빙하 국립공원. 세로 피츠 로이(3,405미터)와 세로 토레(3,128미터) 봉우리 주변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을 머물렀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거의 매일 방수 잠바의 성능을 확인하는 날들이었지만, 혹독한 기후도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엘찰텐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페리토모레노 빙하였다. 30킬로미터 길이에 5킬로미터의 폭, 60미터 높이의 얼음덩어리 페리토모레노 빙하는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빙하 중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혔다. 그곳에서 부서지는 얼음덩어리 하나를 보기 위해 지구를 가로질러 날아온 이를 만나기도 했다. 사흘 내내 빙하 앞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돌아가던 일본인 청년의 눈은 얼음처럼 깊고 투명했다.

(왼쪽)칠레 파타고니아의 대표주자인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만난 야생동물 과나코 가족 (오른쪽)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붉어지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바위봉우리들

(왼쪽)칠레 파타고니아의 대표주자인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만난 야생동물 과나코 가족 (오른쪽)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붉어지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바위봉우리들

정신의 지평을 넓힌 특별한 경험
광대한 파타고니아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곳을 꼽는다면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이다. 원주민의 언어로 ‘창백한 블루 타워’를 뜻하는 토레스델파이네는 대초원 지대에 3천 미터의 높이로 치솟은 거대한 바위 산군이다. 남미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강풍으로 악명 높다. 8일 치 식량을 짊어지고 열흘간 캠핑을 하는 동안 내 정신의 지평선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에서 나는 산을 오르고, 빙하 위를 걷고, 말을 타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배로 바다를 건너갔다. 그 사이 하늘은 그림을 그리고, 바람이 노래를 부르고, 햇살이 춤을 추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이번 생은 이걸로 충분한 것만 같은 충만함이 차올랐다. 통제할 수 없는 야생이 문명을 압도하는 그곳, 지구에 마지막 남은 모험의 땅인지도 모른다.

산봉우리 깃발 일러스트

파타고니아를 만끽하는 세 가지 방법
먼저 ‘토레스델파이네에서 트레킹하기’를 권한다. 여행객을 위한 4박 5일, 7박 8일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다음으로 ‘엘칼라파테에서 뒹굴기’를 추천한다. 빙하 트레킹 외에도 승마와 무지개 송어 낚시, 하이킹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여유롭게 ‘뒹굴며’ 여흥을 즐길 수 있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타기’ 또한 빠뜨릴 수 없다. 그림 같은 풍경이 쉼 없이 차창 밖에 펼쳐지는 특급 열차는 아르헨티나 북부 엘볼손 마을에서 출발한다.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 엘찰텐 지역 피츠 로이 봉우리를 마주하고 휴식 중인 트레커들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 엘찰텐 지역 피츠 로이 봉우리를 마주하고 휴식 중인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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